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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지학순 주교 선종 26주기[3] 제2차 지학순주교님 기념 심포지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03
첨부파일 지학순_주교_선종_26주기_2.jpg 조회수 2,900

 

세상의 빛이 되어야


천주교 원주교구 지학순기념사업위원회가 마련한 제2차 지학순 주교님 기념 심포지엄이 지난 3월 22일 가톨릭센터 2층 마리아홀에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최현순 서강대학교 교수와 장동훈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가 각각 ‘그리스도의 표지가 교회의 얼굴에서 더욱 찬란히 빛나도록’, ‘지학순의 공의회, 지학순이라는 공의회’를 주제로 발제했다.

조규만 주교(원주교구장)는 인사말에서 “원주에 와서 지 주교님이 교육과 언론, 광부와 농부를 위한 활동, 남한강 대홍수 때 수재민을 위한 활동 등 많은 일을 하신 걸 알게 됐다”며 “도산 안창호 선생 등 한 세대 앞선 선비들과 같은 모습이 지 주교님께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심포지엄은 정치인이나 사업가, 경제인이 아닌 사제였고 목자였고 주교로써 지 주교님이 자신의 소명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일부를 밝혀내는 소중한 작업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날 발제를 정리 요약한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표지가 교회의 얼굴에서 더욱 찬란히 빛나도록

최현순 서강대 교수
 

‘빛이 되라’(지학순 주교 인장 표어)

‘믿음의 생활이 교회 안에서는 물론 교회 밖으로 흘러 나아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학순, 「1968년 성탄 메시지」)
 

‘빛’ 혹은 ‘비추다’라는 단어는 지학순 주교의 주교 인장을 비롯하여 원주교구장직을 수행하면서 작성한 사목교서와 사목지침들 그리고 다양한 경우에 행한 강론들에 빈번히 등장한다.

이것은 ‘빛’이라는 단어가 그의 사목방향에 있어 중심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표현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포한 『교회헌장』에서(1964. 11. 21)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 단어이기도 하다. 지학순 주교는 주교품을 받고(1965년 6월) 그해 9월에 개막된 공의회 제4회기(1965. 9. 14)에 참석했다. 이 회기동안에 「사목헌장」과「계시헌장」을 비롯해 7개의 교령이 선포되었는데, 이 문헌들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문헌이 「사목헌장」이다. 「사목헌장」은 6~7 차례의 전면 수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최종 문헌의 모체가 될 기본 초안이 4회기 때 중점적으로 토론됐다. 더욱이 이 헌장은 「교회헌장」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대한 가르침의 두기둥을 이룬다.

지학순 주교가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라는 주제를 다루는 「사목헌장」의 결정적 토론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막 한 지역교회의 목자로서 직무 수행을 하기 시작한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와 관련해 직접적 발언을 하지는 못했어도 「사목헌장」의 의도와 정신을 습득하는 데에 결코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약자들을 위한 교회 : 창립자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교 진리의 인식은 사랑의 실천과 분리될 수 없다. ‘안으로부터 빛을 비추는 교회’, 누룩처럼 ‘안으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라고 인식한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실현된다. 이것은 지학순 주교의 글에도 종종 등장한다.

“교회 안에는 무한한 진리가 있습니다. 배우십시오. 연구하십시오. 그리고 배워서 안것을 실천하십시오. 실행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 참다운 믿음은 남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는 것입니다.”
(「1968년 성탄절 메시지」)
 

“그렇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사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기의 복이나 빌며 남이야 어떻든지, 사회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나 편히 살려고 하는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신앙이 아닙니다.”

(「1976년 성탄절 사목교서」)
 

사랑의 구체적 실천은 지학순 주교의 경우 특히 약자들, 그것도 교회 안에 있는 이들 만이 아니라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약자들을 향해 있다. 1973년 사목교서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자>는 저소득층 근로자들, 가난한 대중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무엇보다 사제들은 저소득층, 근로계층의 교우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해​ 야 한다. 그런데 지학순 주교에게 있어서 약자들을 돌봄이란 단순히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무엇인가 ‘위에서 베푸는’ 동정같은 것, 혹은 양심을 잠재우기 위한 흉내내기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약자에 대한 관심은 근본적으로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

식에 근거하는데, 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만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이들을 교육을 시켜서 본당 내에서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고 말할 때 그러한 인식을 볼 수 있다. 또한 약자를 돌봄은 전교를 포함하여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없다. 이것은 1973년 사목세부지침에서

재해대책 사업에 대한 교회의 원칙적 태도를 명시하면서 나타난다. 당시 원주교구 내에 재해대책사업 진행 실태 조사 결과 민중이 교회에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교회가 민중생활을 외면한 채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던 것, 그리고 구호물자 증을 조건으로 신자수만 늘리려는 어리석은 선교방식이 그 원

인이라고 분석한다. 지학순 주교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교회는 조건없는 사랑을 민중에게 주어야 한다. 교회는 이해로 얽힌 장바닥 같은 성전이 아니며 신앙을 강요하거나 돈과 그것을 바꾸는 집단이 될 수 없다.” 가난한 이들을 돌봄은 어떠한 것을 위해서든 그 수단이 될 수 없다.​


인간을 위한 교회 : “그리스도의 표지가 그 얼굴에서 찬란히 빛나도록”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근본적으로 지향했던 것도 ‘사람들을 위함’ 이었다.
 

“교회는 그 자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리스도에 의해서 존재하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 온전히 있고 싶습니다.”

(바오로 6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3회기 개막연설(1964. 9. 14)」)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전날 행한 담화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가톨릭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인본주의’라고 역설한다.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공의회의 영성의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거대한 사랑이 공의회 전체를 관통하였습니다. 인간적 필요들에 대한 발견은 우리 공의회의 관심을 끌어당겼습니다. 우월한 것들의 초월성을 버린 현대의 인본주의자들이여, 적어도​ 이것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우리의 새로운 인본주의를 인정해주십시오. 우리도 인간을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바오로 6세, “Homilia in IX Concilii Sessone” (1965.12.7), in EV 1, 456*)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향하는 교회는 ‘하느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위하는 교회’다. 
공의회가 보여주는 이러한 전망은 지학순 주교의 사상과 활동에 매우 잘 반영되어 있다. 그가 바라보는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실재가 아니다. 원주교구장 직에 취임하면서 이 직무의 수행이 신비체의 성장을 가져올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져오는 일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이러한 폭넓고 개방된 전망을 보여준다. 그의 관심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이다.


“구제해야 할 것은 인간이며 개혁해야 할
것은 인간 사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개체로서의 인간, 전체로서의 인간, 즉 인간 자체인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과 쇄신」, 『빛이 되어라』, 33.)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기본 권리를 향상시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사회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 자체의 실현이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의 핵심이란 교회 사명의 쇄신이고, 그 사명이란 곧 폭력에 짓밟히고 불의한 조각과 기구에 희생되는 이들의 소리를 들어주는 일, 세상 가운데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라고 보았다.​

 


빛이 되라

‘빛이 되라’는 그의 주교 인장 표어처럼, 지학순 주교는 교회가 세상 안에서 교회 내부로부터 세상을 밝히고 성화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가 비추기를 원했던 빛은 「교회헌장」의 가르침처럼 그리스도 자신의 빛이었다. 교회의 얼굴에서 빛나는, 다시 말해 교회의 실존에서 드러나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즉 「교회헌장」 8항이 말하듯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가난해지셨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돌보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이 교회의 실존 안에 드러나야한다. 교회의 얼굴에서 빛나는 이 빛은 교회 안에 있는 이들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다. 이 빛은 아직 이 구원공동체에 ‘충만하게’ 속하지 않은, 혹은 아직은 이 공동체에 ‘정향되어’ 있는 이들도 비추어야 하고 나아가 온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도달해야 한다.

지학순 주교의 교회관과 사목방법은 현재의 한​국교회에도 여전히 의미 있다. 한국천주교회의 현재 상황이 이전만큼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은 여러 자료들이 보여준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대한 가르침에 비추어 보건대, 지학순 주교가 인간을 위한 교회,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지 못하는 것을 당시 신자 수 감소의 원인으로 진단했던 것은 지금의 한국교회에도 큰 울림을 준다. 왜냐하면 결국 교회의 얼굴에서 빛나야 하는 빛이란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이 첫 자리를 차지하는 교회가 아니라 그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교회라면 사람들, 특히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교회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할 것이다.​

 

 



지학순의 공의회, 
‘지학순’이라는 공의회

장동훈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회의 사명

지학순 주교는 공의회를 ‘2천년사의 획기적인 대사건’, ‘교회 혁신의 위대한 진보’, ‘위대한 정신적인 혁명’, ‘혁신적인 종교개혁’, ‘전 세계 교회의 장구한 묵상’ 등 다양하게 표현하며 자신에게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하나의 사건이었음을 자주 고백했다.

지학순 주교에게는 교회가 인류와 인류 역사에 깊이 결합되어있다는 공의회의 가르침은 어떻게 의식되고 있었을까? 그는 교구장 취임 초기부터 공적발언에서 사회를 의식한 발언을 빠트리지 않았다. 1965년 6월 29일, 주교 성성과 원주교구장 착좌식 취임사에서 그는 민주국가 건설에 협력할 것을 다짐하며 “종교는 사회의장식품이 아니라” 사회의 도덕확립을 위해 실제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회 안에서의 종교의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는 불분명하다. 한국천주교회의 민주화를 둘러싼 국가와의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기 이전이었고, 교황공사를 비롯한 주교들, 국무총리가 참석하고 1군 군악대가 동원된 자리였음을 감안할 때 발언은 의례적인 수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사목 표어 ‘빛이 되어라’에 대해 설명하는 1971년 사목지침은 그가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세상에 옳고 바른 영향을 주고 선으로 승화할 역할을 지녔고 대중의 편에 서서, 사회 전반에서 정신적인 지도적 위치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의회의 영향이 뚜렷하게 확인되는 곳은 이듬해 1971년 성탄메시지를 겸한 1972년 사목교서다.

“교회는 사회 속에 현존하고, 사회 내에 현존하고 교회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할 뿐만 아니라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할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교서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레오 1세의 노동현장,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와 교사’, 공동선에 반하는 정치형태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사목헌장 73항을 차례로 인용하고 있다.

5·16 장학회와 공동으로 설립된 원주문화방송의 부정부패를 둘러싸고 촉발된 부정부패규탄대회(1971년 10월 5일) 이후의 교서임을 고려하면 이 사건이 지 주교에게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사명이란 자의식을 구체화하는데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원주교구 30년사’는 이 사건을 ‘인간의 보편적 구원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가르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을 실천하는 교회로서 출발하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하고 있다.​

 


양심선언과 한국천주교회

 

1972년 성 베드로 바오로 대축일에 바오로 6세는 이렇게 강론했다.

 

“더러는 공의회 후에 교회 역사에 청명한 날이 올 것이라 믿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온 것은 구름의, 폭풍우의, 어두움의, 탐색의, 불확실의 날입니다.”
 

변화된 교회상 앞에 성직자 수도자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대량 환속, 신자들의 교회 참여 감소, 교회 내 보수파와 개혁파 양단 사이에 끼어있는 자신의 처지 등, 공의회 이후 찾아온 전반적인 혼란과 불안에 대한 소회이다. 그러면서도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의 실현은 역사적 부침에도 이루어져야하는 것이고,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청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과 구속사태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은 지학순주교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회는 역사이래 가장 응집력 있는 시간을 직면해야했고, 세상 안에 처한, 세상이 깊이 결합된, 세상을 위한 교회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의 새로운 자기이해는 이로써 선언적 차원을 넘어 한국교회 안에서 역사적으로 고백될 수 있었다. 물론 교회의 현실참여만을 기준으로 공의회 수용의 깊이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학순 주교의 구속은 적어도 사태에 연류된 주체들로 하여금 피상적 인식에 머물던 공의회를 한국의 현실이라는 ‘맥락’ 안에서 다시 읽게 만들었다. 한국교회에게 현실

참여를 가능하게 한 근원적 토대가 공의회의 가르침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주교의 구속이라는 사태로 증폭된 현실참여를 통해 한국교회가 그 정신을 더욱 폭넓게 해석하고 수용하게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빛인 동시에 그림자이기도 하다. 주교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통해 촉발된 정치권력과의 전면적 대립, 교회 분열이라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파는 어떤 면에서 한국교회 안에 공의회에 대한 이념적 선입견을 일정부분 형성했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현실참여를 둘러싼 첨예한 시각차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교회의 헌신을 가능하게 한 토대가 공의회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교회의 모두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1977년 백낙청의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공의회는 왔지만 아직도 모두에게 온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교회가 ‘역사 안에’, ‘세상 한 가운데’있다는 공의회의 고백은 공의회를 수용한다는것 역시 단순한 상부지침의 충실한 집행이나 공의회가 생산한 문자에만 몰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오히려 그것은 공의회의 문자를 계속해서 뛰어넘는 일이고, 오늘의 현실에서 쉼 없이 다시 읽혀져야 하는 것

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학순 주교는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맥락 안에서 공의회를 용기 있게 다시 읽은 수용의 모범이자 뛰어넘어야할 역사인 것이다.​

 



글 원상호 사진 원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