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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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포맷변환]150664526652e534d39f5516f86d8bc87b2bb952ad.jpg | 조회수 | 3,629 |
긴 여행을 가기 전에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일주일 동안 신나게 놀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원주 갈 짐을 싸고 있었다.
오늘부터 원주민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 원주시 흥업면 대안1리 승안동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학교에 가던 학생이었는데, 여기서 나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일찍 일어나 내가 직접 밥을 하고, 학교가 아닌 승안동 녹색 농촌 체험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주위는 온통 논과 밭인 이 곳은 버스가 하루에 다섯 대밖에 다니지 않는다. 또 가로등이 많지 않아 밤에 걸어 다니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환경에서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씩 시내에 있는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청소와 빨래를 직접하며 살았다. 아무리 여행자 몸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잠깐 나의 의식주 챙겨봤다고 해도 한 달간 지속적으로 살림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엔 할 일이 너무 많게 느껴지고 서툴렀다. 힘들다고 투정부리기도 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찡찡거렸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니 이 곳에 물들게 되었다. 내 생활이 승안동 마을에 맞춰졌다고 해야 하나. 처음엔 시장 안에서 어디가 어딘지 구별도 못했던 나는 화장실을 찾아가는데도 2층 시장을 다섯 바퀴 돌았다. 그래도 한 네 번 가다 보니까 내가 원래 가던 활동 구역처럼 시장의 길을 줄줄 꿰게 되었다. 맛있는 밥집도 몇 군데 알게 되었다. 새벽에 밥하기 싫어서 차라리 다음 날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좀 익숙해지고 나니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밥을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원래 하던 일처럼 익숙해졌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적응을 해 나갔다. 이 생활에 익숙해지며 8기는 본격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우리도 한 달 동안 이곳 주민으로 살기 때문에 인사도 드리고,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새로 이사 왔다고 넉살을 부리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다. 토마와 지나는 마을회관에 가서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며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다. 할머니들은 항상 토마와 지나를 기억할 때 “그 트로트 부른 애 있잖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덕분에 어르신들은 우리를 굉장히 환영해주셨다. 이 마을은 천주교 신자 분들이 많아서 종교가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질문하며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셨다. 이 계기로 마을회관에서 함께 고스톱을 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8기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떠별들 사이의 대화도 많이 변했다. 도시 청소년들의 대화가 승안동 마을 주민의 대화로 변했다. 내일 반찬은 뭘 할 건지, 버스는 몇 시에 오는지, 또 옆집 할머니를 만나고 온 이야기를 하는 등 많이 구수해졌다. 원래 여기 살던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우리는 승안동 마을과의 위화감이 없어졌다. 자기 의식주도 챙길 줄 알고, 마을에서 넉살도 배웠으니 이제 어디에 던져놔도 잘 살 것 같다.
8기는 세 팀으로 나눠져 여행을 떠났다. 영상 팀, 문집 팀, 전시 팀이었다. 나는 영상 팀에 들어가서 원주 여행을 했다. 영상 팀의 이름은 ‘관촬’이다. 관계자 외 촬영금지라는 뜻이다. 팀원은 나, 차나, 뽀글이, 결(길별, 길 잡이 별=교사, 떠별, 길 떠나는 별=청소년)이다. 이 팀과 함께 원주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다. 밥 짓기부터 시작해서 시장 보는 것, 이동, 팀별 여행까지. 프로젝트 팀끼리 많이 붙어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영상 팀답게 우리는 촬영을 엄청 열심히 했다. 닫기 모임, 떠별들이 요리하는 모습, 일상 생활, 선생님들의 강의, 팀별 여행 등을 찍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게다가 우리 팀은 인원이 세 명뿐이어서 밥하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여행 일주일이 지나자 뽀글이가 발을 다쳤다. 깁스를 할정도였다. 처음엔 금방 낫겠지 하면서 차나와 내가 뽀글이의 촬영 당번, 밥 당번, 청소도 다 해줬다. 그런데 뽀글이는 거의 여행 내내 깁스를 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나는 지쳤다. 그런데 자꾸 뽀글이가 뒤에서 뛰어다니고, 길별들 앞에서만 업히는 척했다. 그걸 보니 솔직히 화가 발끝부터 콧구멍까지 차오른 기분이었다. 차나는 이 일을 알면서도 아무런 불만도 내색하지 않았다. 나만 여기서 불만을 얘기하면 이기적인 애가 될까 봐 말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화가 머리쯤을 찍었을 때 뽀글이가 깁스를 풀었다. 그 후에는 그럭저럭 일을 분배하여 잘 지냈다. 마지막 오픈 테이블 때 그때 일이 서운했었다고 말했다. 나는 뽀글이가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미안하다고 힘들었겠다고 사과했다. 그러니까 내가 괜히 속이 좁아 보였다. 스스로가 미워졌다. 체력이 방전되다 보니까 진짜 짜증나는 일이 많이 생겼었던 것 같다. 그까짓 밥 한 번 더, 청소 한 번 더 해줄 수 있는 건데 여행을 하다 보니 힘들어서 예민해 진 것 같다. 관촬 팀끼리 팀별 여행으로 좋은 곳도 가고 원주를 즐겼지만, 난 이 일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4차 산업혁명, 협동조합, 기후 에너지 그리고 원주에 살았던 인물 등 원주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원주의 인물 중 김금원, 이 여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금원을 알게 된 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 수업 시간이었다. 조선시대 사람인 김금원은 조선 최초 여성 시 모임을 만들고, 열네 살 때 남장을 하고 전국을 여행한 이야기를 기행문으로 남긴 최초의 여성이다. 정말 멋있었다. 나는 영상 팀에 들어갔기 때문에 주제를 하나 잡아 영상 한 편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꼭 김금원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졌다. 원주에서 박미현 선생님께 김금원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호동서락기>라는 기행문을 남긴 김금원은 자신이 여행했던 곳의 이름을 따 책의 이름을 정했다. 충청도 의림지의 ‘호’, 관동지방의 ‘동’, 관서지방의 ‘서’, 낙양성(한양)의 ‘락’, 호동서락기다. 김금원이 주최한 조선 최초 여성 시 모임의 이름은 ‘삼호정시단’이었다. 이렇게 화려해 보이기만 한 그녀의 삶은 생각보다 굴곡졌다. 남장을 하고 여행을 떠났는데 이 과정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여자는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성별을 숨기면서까지 여행을 해야 하는 현실이 비참했다고 한다. 나는 멋있다,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을 겪었을 거라는 생각에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그래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이 영상을 만들어서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러기엔 김금원의 생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누군가가 진심으로 그녀를 기억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내 영상의 흐름을 바꿨다. 내가 김금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이제는 내가 김금원의 생을 따라가며 몸으로 기억해보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관촬팀은 소금산으로 두 번째 팀별 여행을 떠났다. 소금산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이다. 지금 은 금강산에는 못 가보니 소금산 이라도 가서 그때 김금원이 봤던 경치, 그녀가 느꼈던 기분을 맛보고 싶었다. 소금산이 생각보다 먼 거리에 있어서 우리는 아침도 못 먹고 짐을 싸서 길을 나섰다. 힘겹게 도착한 뒤 우리는 소금산으로 보이는 산에 바로 올랐다. 한 삼십 분 정도를 올라갔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에서 본 거랑 많이 다르기도 하고 표지판도 하나 없었다. 알고 보니 소금산 근처에 있는 뒷산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올라갔으니 체력만 낭비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려와서 소금산으로 갔다. 그러나 너무 지친 우리 팀은 소금산의 절경이 잘 보이는 강가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강을 따라 걷는데 소금산이 눈앞에 나왔다. 정말 아름다웠다. 솔직히 나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다 똑같이 생겼거니 했는데 내가 여태껏 봐왔던 산들과는 달랐다. 누군가가 조각을 한 것 같았다. 그 바위들을 오르는 클라이머들도 보였다. 느낌이 색달랐다. 강가에 도착했다. 나는 김금원의 여행처럼 물에도 들어가 놀고, 그늘에 누워 쉬기도 했다. 그렇게 누워 하늘을 바라봤는데 너무 예뻤다. 문득 김금원도 여행하는 동안 매일 예쁜 하늘을 봤을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정말 부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왠지 이 날 만큼은 내가 김금원이 된 기분이었다.
“어르신 뭐하세요?” 밭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동네 산책을 다녀오시는 할머니를 보면 항상 여쭤봤다. 그러면 항상 친근하게 답변해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