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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이야기 [6]- 사회적경제로 그리는 사회 지향과 실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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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盈科不行(불영과불행)


  

< 이 글은 지난 7월 6일 대전에서 열린 제 2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포럼에서 ‘지역연대 전략과 실천’의 주제로 한 토론자료입니다. >

 

신협에 몸담고 있습니다만 사회적경제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사회적경제영역에 대하여 국외자(局外者)적인 시각으로서 토론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평소 신협인으로서 사회적경제의 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제안을 받고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배움의 기회로 알고 왔습니다. 덕분에 간략하게나마 사회적경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발제문과 현장 사례를 받아보고, 평상시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너그러이 도움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자료를 찾아보면서 느낀 것은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 자체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자신은 아직도 명확하게 “사회적 경제는 이것이다.”하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2018 사회적경제 국제포럼>에서 기조 연사였던 폴 래드(유엔사회개발연구소장)의 “사회적경제는 이윤보다 사회적, 환경적 목표를 우선으로 삼고, 경제활동에서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민주적 자주 관리와 적극적 시민의식의 관점에서 경제적 실천을 성찰함으​로써, 경제에 대한 사회의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라는 말에서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바를 어렴풋이 느낄 뿐입니다.

사회적경제 문외한인 제게 ‘내가 꿈꾸는 사회적 경제’라는 김기섭 박사님의 글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먼저 사회적 경제에 대한 시각을 첫째, 시장사회의 대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해방적 관점’, 둘째, 실업과 복지 문제 같은 국가와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는 기능으로 보는 ‘보완적 관점’,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의 민영화 전략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비판적 관점’의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고, 현재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는 해방적 관점은 빠진 채 보완적 관점, 그것도 대부분 국가정책에 규정당하여 ‘일자리 창출’이 보완의 거의 전부라고 분석하였습니다. 또한 유럽의 경우는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실업 문제, 시장 세계화에 따른 복지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가 (재)활성한 반면,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는 고용의 위기와 동시에 생존(노동)의 위기, 복지 전환 이전에 복지 부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체력조차 대단히 취약하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소상공인과 서민을 많이 접하는 신협 현장에서는 크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김 박사님께서는 구성원 각자가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사회 전체를 바꿀 해방적 비전을 그리면서, 한 인간과 그들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기능주의를 넘어 하나의 완성된 개체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이런 실천들이 지역차원에서 모여 한 인간을 살려내고 사회 전체를 바꾸는 해방적 연대를 모색하면서, ‘공익’과 ‘사회적가치’의 추구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생명의 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회적경제를 꿈꾼다고 하였습니다. 즉 내부적으로 전일적 개체를 지향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이런 지향을 담은 개체들이 더 큰 차원에서 다원적 개체로 연대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어떻게 시작할까요? 저는 인간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협에서 활동하면서 협동조합운동이란 과연 ​뭘까? 늘 자문해 보곤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답이 있었지만 가장 와 닿은 답은 인간존중운동, 즉 자신의 자존감을 찾고, 그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는 운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존감을 통해 자립 의지를 세우고, 자립한 개인과 단체들이 상호존중의 마음으로 협동하고 연대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존감은 구성원 각각의 자존감을 말합니다. 리더 그룹 만의 자존감이 아닌 참여자 모두의 자존감 회복! 원주의 협동조합 리더들께서는 이 점을 아주 많이 중요시 했던 것 같습니다. 협동운동을 하면서, 구성원(참여자)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동의 진행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었습니다. 과거 1970년대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활동이 그러했고, 가까이는 노숙인급식소 ‘십시일반’의 활동이 그러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지도자들의 자기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속적인 교육이 동반합니다.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일본의 치바현에서 생협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바람의 마을’이라는 사회복지법인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 법인은 ‘인간존중’의 정신으로 시설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배울 점이 많았는데 그중에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움직임이 아주 불편한 노인일지라도 배변이나 목욕을 할 때 가능한 한 본인의 힘으로 해결하도록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설관리자는 소극적인 최소한의 지원 만 합니다. 업무처리에 시간과 노력이 배(倍)로 들텐데도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법인이사장의 답변으로는 “배변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맡기는 상황이 되면 치매의 정도가 급격히 심해집니다. 이것은 아마도 자존감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일을 본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수치심 때문에 정신적인 통제력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치매입니다. 그래서 자존감 유지를 위해 배변과 목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은 매우 중요합니다.” 의학적으로 맞는 설명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심정적으로는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요즘 사회적 경제가 급속히 확산되고 기능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참여자들을 사업의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일도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잠깐의 성과를 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설령 고용같은 사업적 성과가 있었다할지라도 이것이 진정한 사회적경제 성과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자존감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구성원들의 필요와 욕구의 해결이 궁극적인 사회적문제의 해결로 연결될지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사회적 금융관련 회의를 가서 있었던​일입니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오래하셨던 분께서 참석하셨는데, 그 분으로부터 1988년에 어떤 어른을 찾아뵈었던 일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고 있던 소속 단체에 맞는(필요한) 문구, 경구(警句)의 붓글씨를 부탁드렸다고 합니다. 그 때 받은 글이 ‘물과 같이’였다고 합니다. 격렬한 시국(時局)통에 그 작품은 잃어버렸지만, 그때 붓글씨를 써 주시며 하셨던 어른의 말씀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네들은 운동을 불(火) 같이 하는구먼… 아주 위태로워 보여…! 운동은 물(水)과 같이 해야 하는 거라네. 유연하게… 낮은 곳으로… 낮은 곳부터…꾸준히 빠짐없이 채워나가면서…” 不盈科 不行(불영과 불행)! 맹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자세도 이러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능적으로는 웅덩이를 우회하거나 빠른 속도로 넘어서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경제는 웅덩이를 채우고 넘어서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웅덩이를 채우고 나아갈 때 김 박사님께서도 말씀하신 해방적 관점의 사회적 경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웅덩이를 채우는 것은 참여자들의 자존감, 참여자들의 협동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리더들의 끊임없는 자기헌신과 지속적인 교육이 같이해야 하겠지요! 저도 문득 갖는 의문이지만 다른 분들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바쁜 세상에, 어느 세월에 웅덩이를 채우고 있습니까?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웅덩이는 대충대충 뛰어넘더라도 빨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지!!”라고 반문합니다. 웅덩이를 대충 빨리 뛰어 넘거나 우회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똑똑(?)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웅덩이를 채우고 나아가는 것만이 물이 역류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애써 그 확실한 방법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무시합니다. 그 결과 역류(逆流)를 경험합니다. 일부이지만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지역의 선구자들께서는 웅덩이를 묵묵히 채워 나가셨습니다. 때로는 당신들 생(生)에서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웅덩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참여자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자기헌신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웅덩이를 채워나가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다 넓게 세상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과학자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생각이 짧은 탓에 저는 뉴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를 뒤엎고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또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오류를 뒤엎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온 것이 과학사(科學史)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뉴턴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의 연구가 있었기에,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뉴턴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에 더 멀리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 인물들의 업적이 없었다면 어떤 뛰어난 과학자라고 할지라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기껏해야 이전 과학자들의 성취정도 만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거인의 어깨 위에 난쟁이가 되려 합니다. 그러나 거인이 없다면 난쟁이는 결코 멀리 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난쟁이가 되려고만 할 때 멀리 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으면서 거인의 존재를 잊고, 거인의 키가 자신의 높이라고 착각하는 난쟁이도 왕왕 있습니다. 내가 채워가는 웅덩이 물이 모여 거인의 어깨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토론회에 참가하면서 많은 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사회적경제와 신협을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 돌아보았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신협이 신협 본래의 목표인 복지사회건설보다는 기능적인 금융업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둘째는 내부직원 및 조합원 교육의 부재로 인하여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잊고 있었습니다. 셋째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신협 사이에도 불필요한 경쟁과 질시가 있었습니다. 넷째는 좋을 때는 내 덕, 어려울 때는 사회 여건을 탓하는 게으름이 있었습니다. 

다섯째는 조합원들에 대한 지적 오만함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감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김기섭 박사님의 깊은 철학과 각 지역에서 닮고 싶은 모델을 만들어가고 계신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덕분에 자존감을 한껏 재충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신협이 저질렀던 실수를 겪지 않으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신협이 겪었던 실수를 교훈으로 삼아 보다 멀리 넓게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많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신협은 2020년에는 환갑을 맞습니다. 신협을 거인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신협이라는 거인의 어깨를 밟고 보다 멀리 넓게 살펴보시고, 사회적경제를 더욱 발전 시켜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발표사례에 대한 감상 
 “현장의 실천 사례에 대하여”

대전 사회적경제 혁신플랫폼

 사회적경제 민간성장전략으로 인프라구축과 생애주기별 협동조합 설계라는 두 축을 설계하고 진행한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통영역과 보건의료돌봄영역 두 가지 인프라 구축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하니 축하드립니다. 원주에서도 통합돌봄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노하우를 배우고 싶습니다. 또한 로컬푸드 플랫폼과 푸드플랜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먹거리와 관련한 모든 과정을 지역 중심으로 재편해 나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 또한 벤치마킹하고 싶습니다.궁금한 것은 보건예방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이 적지 않을 텐데, 그리고 혁신플랫폼을 구축 초창기 예산 부족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결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역혁신플랫폼에 지역 생협과 신협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잘 안되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구 민관거버넌스의 경험과 과제

행정의 적극적인 변화, 중간지원조직의 탁월함, 그리고 사회적경제에 대해 우호적인 시민사회, 대학, 전문가집단들이 있어 ‘One Team’으로서의 거버넌스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대구가 부럽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결과적으로 강력한 ‘사회적경제플랫폼’을 확보했다고 했는데 그 신뢰 형성의 노하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또한 대구 사회적경제 민관거버넌스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로 제시한 ‘확장된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정책 연구 활동의 체계화, 사회적 자산화를 잘 성취하시어 전국적으로 좋은 모델을 제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한살림제주의 사회적경제활동 경험

한살림생협이 주축이 되어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이끌어 오신 것이 인상 깊습니다.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을 주관하셨는데, 한살림제주 내부에는 사회적경제위원회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 오셨는지? 사회적회계를 도입하여 성과지표 관리를 한다고 하셨는데 그 효과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즐거운 밥상 활동보고

쉽 지않은 경제 여건에서 자활기업에서 출발하여 성공적인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정착한 모습에 감명받았습니다. 2014년 이후 매출액의 변동이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직원들의 자존감, 소속감을 높이기 위하여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글 장동영 원주밝음신협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