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2-26 |
---|---|---|---|
첨부파일 | 가족생명학교의_하루.jpg | 조회수 | 1,969 |
다시, 밥 : 한살림을 생각하다 <이 글은 무위당사람들 69호에 실려있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가(밥歌)는 김지하 시인의 ‘밥’의 시구에 노랫가락을 입힌 것입니다. 2019년 8월 한살림조합원으로 생산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밥가를 함께 불렀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 자리 모여 밥을 지어먹는 단순한 축제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알 수 없고,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누가 어떻게 먹을지를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한살림을 앞에서 이끌었던 박재일 회장님(仁農 朴才一 ,1938~2010)은 이렇게 말합니다. “땅과 사람, 물건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갈라지고 못 믿는 사이가 되는 삶이 살림의 삶일까요? 또한 농산물 값이 내려가면 농민은 울고 소비자는 좋아하고, 농산물 값이 올라가면 소비자는 울고 농민은 좋아합니다. 이처럼 다른 이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삶이 과연 옳은 삶일까요?”
이러한 고민 속에 박재일 회장은 스스로 답을 찾습니다. “직접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만나게 하고, 친한 사이가 되도록 하여,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하는 사이가 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렇듯 한살림의 출발은 단순하였지만, 모든 이에게 뜨겁고 강렬하였습니다. 밥은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에게 똑같은 하늘이었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흔히 동양고전에서는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 구절이 있습니다. 생명이나 기본적인 경제문제를 지칭하는 말로 “밥은 하늘이다”는 수식어는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살림의 밥은 조금은 다릅니다. 맹자(孟子)로부터 근대한국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경제문제는 ‘항산(恒産)’이 되었든, ‘기본소득’이 되었든 말이나 용어만 달라졌을 뿐 제도의 개혁과 위로부터의 변화를 촉구하는 외침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민초들의 역사는 유토피아(Utopia)와 디스토피아(dystopia)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며 고뇌하고, 절망하며, 순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살림의 밥’은 달랐습니다. 당당히 ‘개벽(開闢)’을 외치고, ‘살림’을 실천했습니다. 위로부터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은 것이죠. 그래서 하늘과 땅이 새로 열렸다는 천지개벽의 개벽(開闢)을 자신 있게 내놓았습니다.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한다고 핀잔 일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우간 한살림은 애오라지 백성의 하늘만을 생각했습니다. 밥은 하늘이라는 것을 말이죠.
생산과 소비가 하나라는 생각은 단순하기에 역설적이게도 혁명적이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가격을 결정하였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을 안심과 고마움으로, 생활에 대한 생산자의 불안을 안심과 정성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밥은 하늘이라는 명제로 말이죠. 그 누구에도 기대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누구에도 손을 내밀거나 뻗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같은 하늘 아래의 사람들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살림의 한은 커다란 전체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부분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물론 부분은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부속이 아니라 부분이면서 큰 하나인 의미이겠죠. 그래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해월 최보따리 선생의 말을 인용하는가 봅니다. “천지만물 막비시천주야(天地萬物 莫非侍天主也)”라고 말이죠. 이를 선생은 다음과 같이 풀이합니다.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말이죠. 그래서 ‘밥은 하늘이다’는 한살림의 외침은 한울님들의 조용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를 보는 시선이 이전과는 현격히 달랐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생명의 세계관이며, 원주보고서와 한살림선언의 착상인 것이겠죠. 그래서 그들은 개벽을 외쳤나 봅니다. 그래서 밥은 하늘이라고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생명학교의 하루 지난 8월, 원주한살림 여름 생명학교를 위해 별의별교육문화협동조합과 원주한살림이 함께 마음을 모았습니다. 공근의 ‘삼원수 공동체’에서 말이죠. 횡성의 공근은 한살림의 초기생산지로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한살림 생명학교를 이곳에서 하는 것에 의미가 더욱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가족생명학교는 처음부터 참여자들과 함께 만들어 갔습니다. 한살림의 가치와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가자는 뜻에 동참한 것이었죠. 이러한 마음으로 세 번의 사전회의가 있었고,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를 함께 채워나갔습니다. 드디어, 생명학교의 날이 밝았습니다. 다행이 날씨도 무척이나 맑았습니다. 약간은 더웠지만 말이죠. 이날 아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매장 활동가 경험을 하고, 수확한 작물을 가지고 맛있는 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을 예정입니다. 간단힌 인사를 나누고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생산자분의 텃밭에 가서 여름작물들을 알아보고, 직접 수확하려고 말이죠. 햇볕이 너무 강한 8월이라 작물이 많지 않았지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아빠와 아이들은 열심히 작물을 수확해 보았습니다. 엄마들은 열심히 장을 봐서, 점심상을 차리고, 아이들은 그렇게 돈(자연물 화폐)으로 오후 간식을 사먹었습니다. 행복은 늘 멀리 있지 않는 법~!! 단순한 점심 한상이 얼마나 맛있던 지요. 이 모든 것이 함께라서 더 좋았던 것이겠지요? 다음은 포스터를 완성해 보았습니다. 준비한 밑그림에 자유로운 생각들을 더해보았습니다. 밥 한그릇이 만들어 지기까지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살림의 밥 그릇을 채워 갔습니다. 이어 오늘 행사의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던 생산자 분들과의 대화시간을 가졌습니다. 생산자 분들이 희생하고 고생하신다고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것을 넘어 한살림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이 시간만 기다렸겠죠? 적당한 물 깊이와, 따뜻한 햇살에 아이들 모두 즐겁게 놀며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짧은 가족생명학교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소소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눠먹으며,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감하고,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큰 가치를 아는 것은 대단한 프로그램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들과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 지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한살림 조합원으로서 뜻깊은 행사에 참여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한살림은 사랑이어라 일찍이 한살림은 필요로 하는 소비자의 삶과 공급하는 생산자의 삶을 보았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농가에서는 먹을거리에 대한 농부의 정성을 흘겨보지 않았습니다. 이를 이어 맨 것은 밥이라는 사랑이었습니다. 단순히 주목받지 못했던 가족을 살리는 살림꾼과 농업을 살리는 살림꾼을 특별히 조명하자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하나 소외 되지 않도록 모두 다 살리고자 했던 뜻을 펼친 것이 한살림이었습니다. 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다하는 우리의 어미니들의 마음(母心)을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물론 이 어머니들은 살림꾼으로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겠죠. 그래서 한살림은 사랑입니다. 짧은 하루라는 시간 속에 펼쳐진 ‘가족 생명학교’는 이러한 한살림의 정신이 밥에 투영되었음을 확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하나라는 투박하고 단순한 이 생각은 제도의 변혁의 아우성을 제쳐두고, 하늘아래 사람으로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만나 교우했던 역사적인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족생명학교의 짧은 하루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한살림을 우리들이 부지불식간에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한살림이 대물림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무엇보다도 매장에서 안전한 식자재를 이용하는 것이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소비의 시선이 아닌 살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먹는 것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소비의 시선이 아니라 살림의 시선으로 말이죠.
글 김재익·정소연 별의별교육문화협동조합1) 1) 김재익 별의별교육문화협동조합 이사장, 정소연 별의별교육문화협동조합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