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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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원주에_사는_즐거움.jpg | 조회수 | 1,751 |
“나 때는 말이야~” 현장취재_무위당 선생을 기리는 모임 문을 열고 아래로 흐르다 무위당 선생이 돌아가신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원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20대 청년의 나이로, 분단이후 방향을 잃고 가난 속에 절망하는 청년들을 올바로 교육하고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대성학원을 설립했다는 것. 전쟁 이후 냉전논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우리민족이 살아갈 길은 ‘중립화 평화통일’이라고 주장하여 옥고를 치렀다는 것. 부패한 이승만 정권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외침으로써 많은 시련을 겪으셨다는 것. 박정희 독재정권이 군사정권의 폭압성을 드러낼 때 전국의 재야운동을 뒷받침 하시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셨다는 것. 민중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민주적인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협동조합운동을 펼쳐나가신 점.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분별한 성장논리를 앞세울 때 이렇게 가다가는 인류문명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을 알아보시고 생명운동으로의 전환을 이루셨다는 점, 등. 원주라는 작은 도시 그것도 봉산동 구석에 손수지은 흙집에서 일생을 살아가신 선생이 한국사회 전체에 이토록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원주에서 조차도 많지 않은 것이다. 선생의 집 근처에서 수십 년을 자랐다는 어떤 분은 서른이 넘도록 한동네에 살면서도 무위당 선생이 어떤 분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저 늘 밝은 웃음으로 대해주시는 마음씨 좋은 평범한 아저씨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것은 ‘허름하기만 한 동네아저씨 댁에 웬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출입하는 것일까’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무위당 선생의 진면목은 항상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고 소박함으로 민초들과 어우러지신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선생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주변의 가까웠던 분들은 당신을 일컬어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신 분’이라고 표현하고는 했다. 언제나 땀 흘려 일하는 민중들이 대접받고 살 수 있도록 많은 일들을 추진하셨음에도 이름나는 일에는 언제나 욕심 없이 뒤로 물러서시어 주변의 다른 분들이 앞장설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선생의 이런 모습들은 사회운동, 협동운동에 임하는 제자들에게 늘 하시던 말씀 속에 그 큰 뜻이 담겨있다. 선생은 늘상 제자들에게 ‘모셔라(侍)’ 또는 ‘기어라’라고 말씀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성껏 대하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낮추고 겸허해야만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무위당 선생의 이러한 사상과 실천은 당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신협운동 및 생협운동 등의 협동조합운동에도 반영되어 있다. 선생은 자본가에 대항하는 경제적 약자들의 결사체가 협동운동이라는 서구적 개념을 뛰어넘어 우주의 모든 생명의 존재방식 자체가 협동운동임을 강조하였다. 서로 모시고 섬기며 서로가 서로를 살리면서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협동운동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무위당 선생의 이러한 사상과 실천은 당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신협운동 및 생협운동 등의 협동조합운동에도 반영되어 있다. 선생은 자본가에 대항하는 경제적 약자들의 결사체가 협동운동이라는 서구적 개념을 뛰어넘어 우주의 모든 생명의 존재방식 자체가 협동운동임을 강조하였다. 서로 모시고 섬기며 서로가 서로를 살리면서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협동운동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선생이 가신지 10년이 지났고, 당신이 씨앗을 뿌린 협동운동, 생명운동이 곳곳에서 많은 결실을 내고 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반생명적인 문화가 주류이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전쟁에 참여하려하고, 경제중심 물질중심의 사회는 더욱더 기승을 부려 빈부의 격차가 확산되고 있으며, 환경파괴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 편승하여 우리 협동운동 조차도 일부에서는 모심과 살림, 생명존중이라는 가치보다는 경제중심의 사고가 주가 되고 있음을 목격하기도 한다. 생전에 선생은 ‘무너진 자, 깨어진 자 즉 힘없는 민초들과 함께 할 때만이 오류가 없고 거짓되지 않음’을 강조하시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밑으로 밑으로 흘러 풀뿌리 민초들과 함께 할 것’을 말씀하셨다. 선생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원주의 협동운동 단체들도 진정 우리가 있어야 자리가 어디인지를 바로보고,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서 생명과 평화의 길을 더욱 굳건히 걸어가야 할 때이다.
글 최혁진 (2004년 5월 당시 원주의료생협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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