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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새로운 사람 이지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2-12
첨부파일 19.10_새로운사람.jpg 조회수 3,646

새로운 사람

 

원주에서 보고, 듣고, 쓰기 

글.이지은(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 에디터)

 

 

제 고향은 원주입니다. 태장1동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한 번도 이사한 적 없는 고향집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잠시 학업과 일 때문에 서울과 경기도를 돌아다녔던 시기를 빼더라도 삶의 절반을 원주에서 보냈습니다. 이곳이 좋습니다. 산과 하늘, 밭을 품은 동네 풍경과 야트막한 건물을 보고 있으면 세상 가장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싫기도 했습니다. 고도성장기 끝물이 90년대 서울과 수도권을 지나 원주에 닿을 때, 그래서 브랜드 아파트며 다양한 문화와 세련된 취향이 도시를 덮을 때, 제가 사는 동네는 바깥세상과 담 쌓은 듯 무심히 원주천만 흘려보냈습니다. 과연 이곳에 앞날이 있을까. 더 뒷걸음질 칠 일 밖에 남아 있지 않을까. 혹시 나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 저는 태장1동 LH 천년나무 아파트 앞 커뮤니티 센터 2층에 자리 잡은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이하 스토리한마당)’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동네와 제 삶을 동일시하던 시절은 이제 가고 없습니다. 돌아보니 동네나 제 자신이나 모르는 새 천천히 바뀌어갔습니다. 동네는 사람과 건물을 받아들였고 저는 욕망과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함께 난 건 글이었습니다. 특히,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쓴 글이 좋았습니다. 한 장소에서 일어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며 삶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원주 지역 콘텐츠를 글과 이미지로 풀어내는 ‘스토리한마당’의 뜻에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 프랑스 파리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 10분이면 닿는 뚜르(Tours)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인 루아르가 도시 중앙을 가로 지르는 인구 13만 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하루는 기념품을 사고 싶어 야외에서 열리는 중고시장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뚜르의 옛 모습을 담은 오래된 흑백 엽서를 발견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나온 엽서는 과연 팔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낡고 지저분했습니다. 한참 엽서를 구경하는데 현지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불어를 할 줄 몰랐지만 다행히 이곳에서 공부중인 한국인 친구에게 통역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엽서 속 뚜르 풍경과 역사를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뚜르 중앙 광장과 루아르 강 주변에서 지역 주민이 모여 식도락 축제나 춤 파티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뚜르 안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늦은 밤 시내 중심부에 모여 예술 작업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성이나 역사적인 문화재를 내세우는 뚜르 보다 지역에서 일상을 보내는 뚜르 사람과 도시 풍경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제와 보니 원주도 뚜르 못지않게 괜찮은 도시입니다. 깔끔하고 정갈한 건물과 시내 중심 광장, 푸른 천과 잘 만들어진 공원, 지역 주민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축제, 많은 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뚜르 보다 나은 점도 있습니다. 오래된 거리와 새로운 거리가 공존하고 토박이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고루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 이런 도시를 바탕으로 지역 콘텐츠를 만드는 ‘스토리 한마당’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수 십 만 명의 원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고 싶습니다. 이 길을 원주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원주 안 협동조합과 여러 단체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