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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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9.11_이슈.jpg | 조회수 | 3,721 |
어떤 20대 젊은이의 S-COOP 오사카 방문기 글.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 에디터 / 이지은
지난 10월 23일 화요일 오후, 원주 협동조합 소속 실무자 9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합)햇살나눔, 밝음신협, 원주생협, 두루바른사회협동조합, (주)살림농산, 스토리한마당의 이사장이거나 조합원이다. 오사카 S-COOP와 원주 협동조합은 20여년 가까이 서로의 도시를 오가며 교류했다. 특히 이번 교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져 향후 S-COOP와 원주 협동조합의 ‘다음’을 모색했다.
S-COOP 오사카 에스코프 오사카는 1970년 오사카의 베드타운으로 개발된 사카이시(Sakai-shi)의 센보쿠 뉴타운에 설립되었다. 당시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 시기였다. 경제 효율이 우선시 되고 국가는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근대농업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먹을거리 문제, 공해 문제, 물가 상승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이때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자”는 주부들이 모여 현재의 에스코프 오사카가 탄생했다.
S-COOP 오사카의 오늘 첫날, 양국 실무자들은 에스코프 오사카(이하 에스코프) 본부 내 소강당에 모였다. <보안사> 책을 쓰고 양국 교류에 시작점이 된 김병진, 강영미 선생님이 동시통역을 담당했다. 에스코프의 유래와 이력, 현황 이야기를 마치고 실무책임자 이시카와 씨가 나와 두 번째 발표를 이어갔다. “자본주의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앞으로의 10년 후를 내다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조합원들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에스코프가 하는 일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1998년에 제일 커졌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주식회사였다면 없어졌을 수도 있습니다만 에스코프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돈을 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년쯤 부터 조합원 수가 1만 명 이상 늘었습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전에는 미디어 홍보 같은 것에 집중하지 않았지만, 이때를 계기로 홍보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마 전에 오사카에 태풍이 와서 여러 생산자가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끼리 모금 활동을 벌여 그들을 도왔습니다. 조합원들은 생산자가 만든 물품을 살 때 단순히 물품만 사는 게 아니라 물품과 생산자에 대한 신뢰와 생산자가 물품을 만들어 낸 과정도 함께 봅니다. 우리는 이렇듯 늘 ‘지속 가능한 사회’를 꿈꿉니다. 복지에도 큰 관심이 있습니다. 다만, 복지는 긴 시간이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꾸준히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시카와 씨는 앞으로 착실하게 흑자를 내어 다음 에스코프 오사카 방문 시 새 건물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농담으로 발표를 마쳤다. 이어 햇살나눔 양정열 대표가 질문했다. “요즘 생협은 ‘올드’한 느낌이 들거나 다양한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조합원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 ‘물품’과 ‘조직’ 등에 대해 어떤 방향성을 갖고 돌파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시카와 씨가 대답했다. “첫째, 물품을 폭넓게 유치하되 매입 기준을 엄격하게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안심 먹을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조합원끼리 서로 커뮤니티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행사가 열리게 되고 교류 활동도 활발해집니다. 나아가 복지 제공도 가능해집니다.”
환영 교류회 같은 날 저녁, 방문단이 머무는 호텔 앞 식당에서 환영교류회가 열렸다. 양국 협동조합에서 약 20명 정도가 모여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년보다 ‘젊어진’ 한국 측 방문단 때문에 현지 활동가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 청년의 삶은 어떻습니까?” 한국 측 젊은 활동가가 구글 음성 번역기를 이용해 에스코프 직원에게 물었다. “기운이 없습니다.” 이유를 물었다.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형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어 이시카와 전무에게 물었다. “흔히 일본의 현재가 한국의 10년 후라고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통역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손가락을 다섯 개를 펼쳤다. “10년이 아니라 5년일 것입니다. 이제 막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온 한국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을 참고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해두면 좋습니다.” 역사와 젊은이들이 누려야 하는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이시카와 씨는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일 외에도 다양한 세계를 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부 세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래를 그리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인생 이야기도 들려줬다. “효고현 남부 지진(고베 대지진, 1995)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 2011)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과 사람끼리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협 생산지 ‘오인도 농원’ 이튿날, 오사카시에서 차로 1시간 30분 떨어진 나라현 고조시 ‘오인도 농원’을 방문했다. 이곳은 에스코프가 40년 이상 거래한 곳으로 감, 매실, 가공품을 공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오인도 농원 생산품을 에스코프에 전달하며 생산품의 출하 시기와 생산인, 농약 사용 여부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오인도 농원 대표 세이카 씨가 PPT가 켜진 스크린 앞에 섰다. “생산한 것들을 전량 공용화하고 있습니다. 생산자들의 평등과 공동, 협동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생산물을 전량 공용화하기 전에는 ‘업자’에게 물품을 팔았습니다만 농가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가공품 역시 마찬가지여서, 자체적으로 가공품 공동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편, 오인도 농원은 최근 고민 하나가 늘었다. 초고령화 사회로 인한 인력난 때문이다. “4만 명이던 고조시 인구가 10년 새 3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세대수는 그대로인데 인구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세대 구성원 중 일부가 이사하거나 사망한 경우입니다. 이대로는 농장 운영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농업 기술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농업 기술을 도입하면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됩니다. 일본의 딸기는 배지(식물이나 세균, 배양 세포 따위를 기르는 데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 액체나 고체)에서 생산됩니다. 이런 식으로 오이나 토마토, 피망을 생산하면 노동력을 줄일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농업고등학교(이하 농업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보통 농업학교는 학교 안에 농장과 선생님이 있지만, 우리가 만든 농업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 밖에 농장이 있어 그곳에서 수업이 이뤄집니다. 또한 선생님은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금이 제공되고 기숙사도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젊은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혹시 여러분 중에서 지금 이곳에 남고 싶으신 분들은 남으셔도 됩니다.(웃음)”
‘오인도 농원’은 직업 체험장 오인도 농원에서는 취업 진로센터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중이다. 일본에서는 현재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가 심각하다. 으레 은둔형 외톨이는 젊은층의 문제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중장년층이 된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졌다. 취업진로센터 담당자 우에노 씨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은둔형 외톨이분들이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오인도농원은 이들에게 직업 체험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은둔형 외톨이에겐 아직 상담할 기회가 있지만 서른 살이 넘어갈 경우 이런 상담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스텝업’ 단계로 넘어갑니다. 농원에서 가공품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 같은 단순한 일로 시작해 조금씩 조금씩 단계를 높여가는 식으로 직업 체험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비단 은둔형 외톨이뿐만 아니라 학교 중퇴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이렇게 지난 3년간 32회 직장 체험을 하고 총 74명이 참가했다. 매실이나 감을 손질하거나 매실 장아찌를 만들고 가공품에 라벨을 붙여 발송하는 업무 등을 체험하고 7명을 채용했다.
‘젊은’ 원주 협동조합과 오사카 에스코프 셋째 날, 양국 실무단은 다시 에스코프 본부 소강당에 모였다. 먼저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이길주 이사장이 원주 협동조합의 현황 및 미래를 얘기했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원주 지역 내에서의 협동운동을 말합니다. 특히 네트워크는 각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지역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같이 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립, 자치, 돌봄, 나눔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2010년에 들어서는 ‘협동조합 교육’에 중점적으로 힘을 쏟고 있습니다. 원주에서 계속 협동조합 정신이 재생산 및 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양국 젊은 활동가가 자신의 활동 사항을 발표했다. 먼저 원주 두루바른사회적협동조합 정주형 이사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의사소통과 심리의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장애인, 다문화 분들을 위한 강원도 지역기반형 언어치료센터입니다. 현재 원주와 춘천, 두 곳이 있습니다. 이런 재활 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나 제공하는 사람이 모두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몰리고 있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납니다. 저희는 이런 점을 해결하고자 뭉친 강원도 언어치료사 협동조합입니다.” 이어 오사카 에스코프 요시다 씨가 에꼬로 제도를 소개했다. “에꼬로 제도エッコロ制度는 조합원끼리 서로 도움을 주는 시스템입니다.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며 매달 100엔씩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크게 ‘활동보장’과 ‘생활보장’이 있습니다. 서비스 1회 이용 시 600엔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 노인이 형광등을 갈 수 없을 때 근처에 사는 조합원이 방문해 전구를 갈아주면 600엔이 듭니다만 도움 제공자는 이 비용을 돈으로 받지 않고 나중에 에스코프 물건을 살 때 할인해주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제도의 목적은 지역 안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활성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보통 1시간 내로 처리할 수 있는 비전문적인 돌봄 형태로만 제공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돌봄은 전문 돌봄 기관에서만 제공됩니다.”
생산과 소비, 그리고 복지 넷째 날이 밝아, 노인 전문 돌봄기관 ‘요리아이 곤고’와 중증 장애인 돌봄기관 ‘피스 아타니시’를 방문했다. 두 곳 모두 S-COOP에서 운영했거나 운영 중에 독립한 돌봄기관이다. 양쪽 기관 모두 일반 주택가 사이에서 높은 천장을 특징으로 운영중이다. 장애인 시설 같은 돌봄 시설이 일반 주택가에 들어올 경우 반대 시위를 하는 한국 사회와는 달리 이곳 주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요리아이 곤고’는 일부러 건물 앞에 나무 데크를 깔아 동네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천장이 높은 이유는 좁은 일본 주택 특징이 사용자들에게는 답답함을 줄 수 있어 불편한 느낌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들은 1995년을 ‘복지원년(福祉元年)’임을 강조했다. 그 해 오사카 옆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이후 S-COOP도 본격적으로 복지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00년 개호보험(스스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간병보험) 사업에 합류했고 2003년부터 방문 케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어 방문 헬퍼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런 전문돌봄기관에서 돌봄 활동을 하는 직원은 돌봄전문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어떤 20대 젊은이의 S-COOP 오사카 방문기 오사카 연수 중에 에스코프에서 운영하는 ‘Hand Cafe’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때 나는 한일 양국 실무단 앞에서 내 소개를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원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로 오사카 에스코프를 방문하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향을 떠나 서울 같은 대도시를 전전하며 일반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망하거나 망하기 직전의 회사를 여러 번 지켜보며 점점 제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올해 다시 원주로 돌아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게 되면서 조금씩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이시카와 전무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식회사였으면 망했지만 협동조합이라 망하지 않았다’고요. 개인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출자를 하고 같은 뜻이 있는 여러 사람이 모여 소통하고 협의하여 일하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항상 냉소적이기만 했던 제 시선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제가 순진한 건지도 모르지만요.” 환영 교류회 때 한국의 어떤 젊은 활동가가 “협동조합이 일본의 미래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상과 달리 에스코프 측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현 자본주의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아니오’에는 어쩌면 이런 활동들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이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생산, 공급, 소비 과정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복지와 커뮤니티가 함께 나타나 다양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존중 받길 원한다. 2010년에 성년이 된 후 책이나 미디어로만 접한 사회를 한 단계 씩 겪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러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사회가 파악되었고 나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의미를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S-COOP 오사카 방문은 더 특별하다. 수동적으로 사회 받아들이기는 이제 멈추고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싶다.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부끄럽지 않은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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