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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소식] 무위당학교사회적협동조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29
첨부파일 그대가_나였음을.jpg 조회수 1,004

무위당 탁본·잠언 展: 그대가 나였음을


돌과 비석의 문양에 스며든 무위당 서화의 숨 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10월 26일부터 31 일까지 원주문화원에서 열렸다. (사)무위당사 람들과 무위당미학연구회는 돌에 새겨진 무위 당 선생의 서화를 찾아 탁본으로 묵향의 혼을 담고자 본 전시회를 기획했다.

이번 탁본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용협동 조합인 성가신협이 탄생한 장소인 부산 가톨 릭센터에 있는 ‘한국 신협운동 발상지’ 기념비 를 비롯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 일 열사 추모비와 조영래 변호사의 묘지석, 원 주 종합운동장에 있는 올림픽성화기념비, 원 주시 태장동 망동동산에 있는 망향의 탑에 새 겨진 비문 등 26여 점의 탁본작품과 원주지역 서예가들이 무위당 선생의 주옥 같은 어록을 붓으로 쓴 무위당 잠언 30여 점이 전시되었다.

힘이 들지만 탁본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위당 선생께서 돌이나 비석에 쓴 글을 탁본으로 떠 놓으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비와 작품에 써 있는 선생의 글을 통해 선생님의 사상을 연구 를 할 수도 있고, 대중들이 비문의 글을 읽으면 서 이 비문이 나오게 된 동기와 비석에 얽혀있 는 인물들과 관계와 인연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무위당 선생께 서 어떤 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셨는지, 또 어 떤 분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 력하셨는지 알 수 있다.

가톨릭 농민회 초대 회장이었던 조한수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김익호는 조한수의 무 덤에 세울 묘비의 비문을 장일순 선생에게 부 탁했다. 약속한 날짜에 비문을 찾으러 가 선생 께서 써놓은 글씨를 보니 김익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툴러 보였다. 김익호는 느낀대로 솔직히 말했다. 

 
    함안조공한수지묘(咸安趙公漢洙之墓), 원주시 흥업면, 70×40cm    

 

“선생님. 글을 되게 못 쓰셨네요!”
선생이 껄껄 웃었다.

 

“자네. 아직 멀었네. 예쁜 글씨가 잘 쓴 글씬 줄 아는가 본데 그렇지 않다네. 잘 쓴 글씨란 그 저 정성껏 자신의 진실을 밝히면 되는 걸세.”

조영래 변호사 묘지석과 전태일 열사 추모 동 지비를 보면서 전태일 열사가 세상에 알려지 고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초석을 만 든 분이 조영래 변호사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선생께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분 들과 있었던 일들을 전해들으며 먹을 두드리 니, 화선지 위로 드러나는 선생의 체취와 체온 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인간의 의지로 글을 남겼지만, 자연의 도움으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을 몸소 체 험할 수 있었다. 햇빛, 바람, 습도, 돌의 종류, 돌의 굴곡면, 동료와의 협동 등 비석을 털어내 고 종이를 붙이며 먹을 묻히고 조심스럽게 종 이를 말릴 때까지, 이 순간에 함께하는 모든 존 재의 합심과 도움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끝으로 이번 탁본전을 시작으로 전국에 산재 해 있는 돌에 새겨진 이야기를 찾고, 그것을 새 로운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 선생의 삶이 시대 를 위로하는 소중한 유산이 되길 바란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분명 그대는 나일세”


 글 이도경 무위당학교사회적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