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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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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어린 시절 봄이 오면 아버지는 이른 새벽 건넛마을 친척집에서 빌려온 소로 밭을 갈았습니다. ‘이랴! 워~ 워~’ 하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지요. 졸린 눈을 비비고 밖으로 나가 한참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커다란 황소가 콧김을 쌕쌕 뿜으며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 나가면 아버지는 뒤에서 고삐를 쥐고 다그쳤습니다. 아버지는 밭을 갈고 나면 한참을 걸어서 그 황소를 원래 집으로 데려다주고 돌아오셨지요. 그리고도 한참을 밭에서 일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일 년 동안 먹을 채소를 그곳에 뿌리고, 심고는 했습니다. 야채를 사다가 먹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초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밭에서 나온 채소들이 밥상 위에 올라오곤 했습니다. 동네 마을잔치처럼 겨울 김장을 담그고 밭 한가운데 커다란 구덩이를 판 뒤, 작은 움막도 지어 독을 묻고 김장과 무를 묻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마무리하곤 했지요. 당연히 쌀농사도 지었습니다. 남의 집 논을 빌려 논농사를 하고 추수철이 되면 마당 한 쪽에 높게 볏단을 쌓은 뒤 타작을 했습니다. 우리 집 뿐 아니라 다른 집도 대부분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른들은 낮에 직장을 다니면서 새벽, 저녁으로 농사를 짓곤 했던 마을이었습니다. 쌀과 야채를 사서 먹는 일은 거의 없었고 아주 가끔씩 간고등어와 두부 정도를 마을 부식가게에서 사다 먹는 정도였지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농경문화는 산업사회에 밀려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부족해,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온 농산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 농산물에는 신선함을 유지해주는 방부제를 비롯해 각종 약품 처리가 된 것이 대부분이지요. 지금 로컬푸드를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이기도 한데, 지역에서조차 농업을 경시하고 농경지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가 주목을 받으면서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학교 급식에 로컬푸드를 공급하고 매장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방안으로도 로컬푸드가 언급되고, 각종 심포지엄과 토론회도 열립니다. 원주는 신선한 농산물을 팔고 사는 농업인새벽시장이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새벽이나 전날 밤에 수확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생산자들이 직접 판매를 하다 보니 믿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컬푸드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데 지역 생협이 큰 역할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생산자는 소비자없이 농산물을 키울 수 없고, 소비자는 생산자없이 신선한 농산물을 먹을 수 없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각자의 집에서 농산물을 키울 수는 없지만, 과거의 농산물을 사랑하고 애용했듯이 지금도 지역의 농산물을 아끼고, 그 농산물을 키우는 생산자인 농부들을 아낀다면 과거 못지않은 신선한 야채와 농산물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애용하고 아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부추를 키우는 비닐하우스에 다녀왔습니다. 부추를 자세히 알기 전까지는 그저 파랑 비슷하고 구운 고기 먹을 때 상추 대신 먹는 식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추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강하고 끈덕진 식물이었습니다. 
그러자 문득 지난날이 생각났습니다. 스무 살 때,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친구들과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우리는 마라도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절에 들러 기왓장에 몇 마디를 썼습니다. 저는 “청춘이로구나, 우린 커서 뭐가 될까”라고 썼고 다른 친구는 “내년에는 외국이다. 남미, 중국, 인도, 북유럽”을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아름다운 것들만 볼 수 있도록”이라고 남겼습니다. 10년 정도 흐른 지금, 그때 썼던 각자의 말이 얼마큼 지금과 닿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몫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겠지요.

스무 살 이후, 우리들은 결국 부추를 닮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믿었던 사람과 멀어지고 믿지 못할 순간이 찾아오며, 견디고 참고 마르고 잘립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지나 각자가 가진 마음의 두께를 찾을 때쯤이면, 결국 살아납니다. 추위에도 꿈쩍 않고, 잎이 잘리는 고통에도 강한 내성이 생긴 부추처럼요. 제게 스무 살 이후의 삶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번 호 주제는 [로컬푸드-부추]입니다. 춘천에서 활동 중인 마을기업 ‘춘천워커즈 협동조합’ 대표와 조합원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지난 9월, 원주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에서 열린 ‘생생마켓’ 소식을 전하며 중증장애인들과 커피를 만들어내는 ‘꿈터 사회적협동조합’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밤공기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짙어지는 가을 속에서 모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