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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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한살림선언_30주년_.jpg | 조회수 | 2,287 |
“한살림선언은 빛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 ![]() 진행자 각자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나기창 청주생산자연합회 소속이고 농사짓는 나기창입니다. 저는 2009년 집으로 귀농하고 2010년 한살림 생산자로 정식 등록했습니다. 유정길 모심과살림연구소 감사이기도 하고 위원이기도 했습니다. 정토회 에코붓다에서 계속 활동했습니다. 귀농운동본부도 관여합니다. 지금은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입니다. 서형숙 30년 전 이맘때 한살림 조합원이 된 사람입니다. 옛날 회원입니다. 지금은 엄마학교를 하면서 한살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윤지혜 82년생 김지영과 동갑인 38살인데 아직 캐릭터도 좋아하고, 종가집 장손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업주부가 됐고 그 과정에서 지금 한살림의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진행자 그럼 먼저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유정길, 서형숙 선생님께 질문드리겠는데요, 30년 전에도 생명운동 한살림운동을 시작하셨거나 함께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30년 전 오늘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한살림선언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세요. 서형숙 저의 30년 전 한살림 회원번호가 1531번이거든요. 과거 30년 전부터 20년 전까지는 회원번호가 몇 번인가에 따라 존경의 수준이 달라졌어요. 세 자리 숫자가 되면 ‘우와 선배님’하고 고개를 숙였어요. 물론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은 아니지요. 노인이라고 다 대접을 받는 건 아니죠. 어른이 되어야 하잖아요. 제가 1531번을 받았는데 그때 다섯 명 모으라고 해서 매일 전화를 해 모으는 법을 알게 되었고, 동네 엄마들이랑 연락도 잘 안할 땐데, 강남의 아파트촌에 살면서 엄마들한테 연락해서 한살림 회원이 되려고 끌고 갔어요. 아이들도 집에 단도리를 잘 해서 놔두고요. 그때가 바로 어제 같아요. 30년 전 요 때입니다. “소비자가 생산자의 하느님이 되어 주세요.” 진행자 나기창 님은 청주에서 상추 농사와 토마토, 벼 농사를 하고 있다고 해요. <한살림운동의 지향>, <한살림선언>의 목소리들이 현재도 한살림에 잘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나기창 5년 전에 한살림선언을 읽어봤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걸 전부다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저 같은 경우는 철학적으로 글로 체득하는 것보다 농사를 짓고 공동체에 있으면서 경험적으로 체득하는 것이 더 크죠. 아산에 갔을 때 유기농업에 대한 감동, 아, 이래서 유기농업을 해야 하는 구나. 실제적으로 진행되는 모델을 눈으로 봤어요. 그리고 농업 선배님들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보고, 배우고요.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이걸 체득하면서 농사의 힘든 점, 한살림의 장점, 지역 농업의 어려운 점을 알게 됩니다. 한살림선언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느낌으로 좋았던 감정들, 생태적인 것들 체득하고요. 좋았던 부분 계속 이어가려고 합니다. 정답은 모르지만 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나기창 님은 2030청년분과 활동을 이끌고 있고요. 소개 좀 부탁합니다. 진행자 윤지혜 조합원님은 올해 무위당학교를 통해서 한살림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느낌으로 참여하고 계신지요. “효율성 그 이상의 가치를 한살림에서 배웠어요” 윤지혜 제가 한살림에 가입한 것은 단순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물품을 공급받고 싶었고 마침 매장이 저희 집에서 1분 거리에 있어요. 가까워서 인터넷 쇼핑을 안 하고 매장에서 바로바로 사먹다가 한살림 새내기 조합원을 위한 쌈장, 고추장 만들기에 참여했어요. 한번은 참가비 만원을 받고 한번은 무료로 수업을 해주셨는데, 그 수업을 받으면서 보니까 지금까지 제가 살았던 세상과 다른 거예요. 고추장이나 쌈장을 만드는 것도 기술인데 누군가 나를 위해서 봉사를 하면서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한살림에서 그런 것을 배우면서 무위당학교를 소개 받아 가게 되었어요. 무위당학교에 가니까 한살림의 생명살림 사상을 많이 배우게 됐고, 그러면서 ‘아, 효율성이 최고가 아니구나. 효율성 그 이상의 가치가 있구나. 이런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행동하는 조직이 있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됐고 계속 배워야할 것 같아요.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어요. 저처럼 젊은 사람들은 효율성 이상의 생명살림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든지, 배울 수 있는 자세가 거의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가치를 전파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 무위당학교에도 가고 한살림을 접하게 되었거든요. 진행자 윤지혜 조합원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조합원들의 욕구가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한살림에도 많은 변화의 요구들이 사회적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서형숙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해주세요. 서형숙 저는 지금 중심에서 나와서 평회원으로 있습니다만 초창기에는 많은 생산자들, 소비자 조합원들끼리 설명도하고, 물품도 보면서 회원 확대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었요. 지금은 회원 확대 시기는 벗어난 것 같아요. 초창기 활동들은 물품에 대한 신뢰, 재정비, 또는 지역 활성화 등을 위해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각자 눈이 다르고, 시력이 다 다르고 키가 다르고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 작은 것들을, 가려운 것들을 풀어내면 씨앗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잘 풀리리라고 기대합니다. 진행자 이어서 한살림선언에 대해서 또 한 번 들어가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선언에 대한 자리니까요. 한살림선언이 1990년대, 2000년대 한국사회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유정길 선생님은 시민사회 진영에 오랫동안 계셨고 현재도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선언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오늘날 이게 또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한살림 운동에 있어서 또 우리가 곱씹어봐야 될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지 내지 비판적으로 봐야 될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지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살림선언을 구현하고 있는 모든 활동들이 모두 한살림 가족” 유정길 한살림선언이 한살림겁니까? 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살림선언은 새로운 생명운동의 선언이었기 때문에, 선언을 하고 선언을 한 주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그 무수한 운동 중에서 생협 운동을 선택해서 진행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살림선언을 구현하고 있는 모든 활동들이 모두 한살림 가족이라고 생각했었고, 한살림이란 말은 일반명사이지 고유명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한살림연합, 한살림생협만 점유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고 새로운 사회운동, 생명운동의 하나의 용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중간에 생명운동이라고 하는 부분에 관심을 갖다가 찬물 끼얹는 몇몇 시련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생명운동, 생명운동 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생명운동을 주창하는 단체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 시작이 한살림선언이었어요. 한살림 초기에는 생협 운동을 시작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선언을 구현하려고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중의 하나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할 것인데 우리가 미처 못하니 다른 단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으니 감사하지 않습니까. 오늘 30주년은 원래 초심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지 않습니까. 한살림이 이만큼 컸으면 다른 메뉴도, 메뉴를 확장시켜가지고 다변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게 안 되면 저게, 저게 아니면 이게, 해가지고 생명운동 전체 큰 판을 가지고 같이 고려했으면 좋겠습니다. 운영이나 경영 이런 것은 현실의 문제예요. 지금 당장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만 놔둬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가는데, 정신과 영성 이런 것은 계속 의식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초심들에 대한 정신성을 강화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살림은 정신적 집단 아닙니까? 정신성이 강화되어야 한살림이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큰 방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진행자 나기창 윤지혜 님도 한살림에 참여하고 관여하면서 과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나기창 저희 세대도 꾸준한 역량이 필요하고 또 선배님들이 해왔던 과제를 이어받기도 해야 합니다. 저의 역할은 유기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농촌에 정착하면서 농업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고 한살림의 문화적인 것을 꾸준히 계속 노력해보고 여기에 젊은 아이디어나 새로운 도전, 변화도 있지만 혁신도 제안해보고 하는 것이 저의 과제고 역할 같습니다. 윤지혜 네, 어찌 보면 30대 생산자님인 나기창 님과 제가 여기 초대됐다는 것 자체가 지금 한살림이 당면한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30대 새내기 조합원과 30대 젊은 청년 생산자분께서 많이 한살림에 가입하셔야지 한살림이 지속가능할 것 같습니다.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젊은 세대들이 한살림을 접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가 싶어요. 일단은 자금이 별로 들지 않는 부분부터 젊은 세대에게 한살림의 좋은 제품을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집이 가깝게 있지 않았으면 한살림을 이렇게 빠르게 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살림에 가보니 말린 호박꼬치며 나물을 직접 만들어서 맛도 보게 하고요, 너무 맛있어서 사고 싶은데 그냥 재료를 사가래요. 만드는 거 어렵지 않대요. 근데 저는 그냥 사먹는 게 나아요. 왜냐하면 처음에는 열혈주부가 되어서 한살림 채소보다 비싼 한살림 양념들을 다 구비 했어요. 남편이 ‘둘이 사는데 무슨 생활비가 이렇게 많이 들지?’ 할 정도로요. 그때 처음으로 ‘아, 양념값이 비싸구나. 그래서 반찬 집 반찬이 저렴한 양념을 쓰니까 맛이 없을 수밖에 없구나.’를 느꼈는데 한살림의 양념만 가지고 조미료 없이 한살림의 좋은 재료로 음식을 하니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편은 한 숟가락 뜨고 먹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전업주부 입장에서는 웬만한 고집 아니면 꿋꿋이 밀고 나갈 수 없거든요. 한편으로 좋은 제품도 있어요. 건새우아우국이나 오뎅볶음 같은 거요. 그러면 남편은 ‘너는 국을 만들지 마라.’ 그래요. 그냥 라면 끓이듯이 국을 하는 게 힘들지 않으니까요. 남편 퇴근해서도 덜 짜증내고 우리 사이도 좋아지고 음식도 더 맛있고 돈도 덜 들어가고요. 진행자 서형숙 선생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30~40대 주부님들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가족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온 세상을 먹이는 것” 서형숙 우리 모두 하루아침에 걷지 않았잖아요. 기고, 엉거주춤하던 시기가 지나서 걷습니다. 아이를 처음 기르는 엄마는 어리숙한 엄마일 수밖에 없어요. 처음 겪는 것이니까요. 철학책을 읽어야 철학이 아니라 소설 속에 철학이 있는 것처럼, 드라마 속에 철학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밥상을 하나 차리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살림이 대단한 것이 하루 세끼를 차리면서 매일 운동을 해요. 그런 단체가 없어요. 무슨 운동단체를 가보면 그 운동에 집중하지만요. 우리는 밥상을 차리는 것 자체가 매일매일 세 번은 해야 되는 잔치고요. 밥상을 매일 차리면서 내가 아는 생산자가 농약 통을 들고 들어가지 않겠구나. 지금 소비자들은 쌀을 많이 먹지 않죠. 생산자가 그 많은 곳에 농약을 뿌리러 다니면 그 분이 더 많이 농약을 드세요. ‘그걸 멈추게 했구나.’ 이런 생각도 하고요. 매일 밥을 차리는 것 자체가 내 가족에게 그냥 밥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먹이는 것이거든요. 다른 면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실력이 분명 늘어요. 진행자 저는 주말밖에 밥을 해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평일에는 거의 밥을 못 해먹습니다.그러다보니까 사실 밥을 지어먹는 것보다는 밥을 해 먹는 행위가 중요한 거잖아요. 같이 그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것이 소중한 것인데, 시간을 내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것이 오늘날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현실이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오늘 이야기마당을 마무리하면서 그런 부분의 고민에 대해서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나기창 제가 일단은 결혼을 안 해서 딱히 잘 안 해먹고요. 오늘 아침에 어머니랑 잠깐 다투고 왔는데, 엄마 생각 많이 나네요. 해준 거 먹고 올걸, 괜히 예민하게 틱틱 했습니다. 돌아갈때는 어머니한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또 집에 가서 밥도 다 먹겠습니다. 윤지혜 돌솥을 사서 남편에게 매일 돌솥 밥을 해주거든요. 누룽지 다 돌려서요. 돌솥에 무를 넣고 무밥도 해주고, 마를 넣고 마밥도 해주고요. 밥은 잘해요. 그런데 반찬은 힘들어요. 1세대 한살림 선생님께서 ‘나는 이렇게 봉사를 하고 생명살림운동을 했으니까 이거 정말 좋은 거야’ 라고 하시잖아요. 저도 마음으로는 좋은 것을 알아요. 그런데 밥하는 여성의 인구가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를 생각해서 그런 시대에 맞춰가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항상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한살림은 굉장히 고지식하게 옛것을 지키고, 정말 우리 땅을 자손에게 그대로 돌려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 이렇게 고집스럽게 가야될까? 생각해봅니다. 왜냐면 정말 예민한 주부는 물품을 인터넷으로 샀을 때 3~4일 배송이 됨에도 믿을 수 있는 안전한 음식이기 때문에 주문을 하거든요. 과연 그렇게 주문하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중간에 새벽배송으로 이탈하는 사람이 많을까? 이런 점에서 내가 과연 어디까지 옳은 것을 지켜야 하고, 또 어디까지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귀를 기울여야 되나? 그 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저와 나기창 님이 토론회를 하고 11월 한살림소식지에도 실어서 30대나 한살림을 이용하는 주부들의 불편함에 귀를 기울여준다고 하지만 내년에 이 자리에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오게 된다면 그때는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서형숙 제가 생각하기에 초창기 한살림 시절에 사진을 맡기러 가면 한살림 씨하고 줬어요. 한살림 씨 인줄 알고요. 그때는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한살림이었어요. 하나 하나 내가 주인이었고요. 그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젊은이들이 화장을 하거나, 인터넷에 가격을 비교하느라 쓰는 시간은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옷을 살 때 이게 실크인지 등을 확인하면서 정작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확인을 안 해요. 저는 처음부터 그걸 깨우쳤기 때문에 한살림에서 오랫동안 할 수 있었어요. 특히 여성들은, 남성들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여성들은 내 배로 내 아이를 낳아요. 그리고 이 아이가 내 앞에서 자라요. 말하자면 내 미래가 내 앞에서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여성들은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 아이로 이어지고 이 터전 자체로 이어지는 겁니다. 고추 묘에 농약을 치면 고추는 25%밖에 안 먹어요. 물로 들어가고, 흙으로 들어가서 내게 돌아오거든요. 요즘 젊은이들 굉장히 똑똑해요. 뭘 가르칠게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분들이 묻지 않으면 가르치면 혼나요. 그럴 정도로 똑똑하고 배운 것이 많고 정보도 넘치고 학식도 풍부하기 때문에 개념 자체를, 어떤 게 더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개념들을 활동으로,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게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친절하게 상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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