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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6-18
첨부파일 마음을_두드리는_옛집_정경.jpg 조회수 797

마음을 두드리는 옛집 정경



원주는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을 관찰할 수 있는 도시다. 고층 주상복합, 대규모 아파트 단지, 오피 스텔 건물이 즐비한 도심을 지나 점차 낮아지는 스카이라인을 따라 읍면 지역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농가주택과 만나게 된다. 산을 뭉텅이로 깎아 만든 택지에는 비슷한 듯 다르게 생긴 전원주택이 옹 기종기 들어서있고, 깊은 시골마을에 이르면 드물게 흙벽집도 눈에 띈다. 기와집, 초가집과 같은 전 통가옥이 잘 보전됐다곤 볼 수 없지만 원주라는 도시를 구성하는 집들은 저마다 가지각색 모양새로 시대를 반영한다.   
도시의 집이 사회의 요구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반면, 농촌의 집은 비교적 속도가 더디다. 그렇지만 한 때,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농촌의 집이 극적으로 변화했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야기다.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기와, 함석 등으로 교체하는 지붕개량사업과 농촌취락구조개선사업이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ㄱ자나 -자의 홑집 배치에서 겹집형태로 대 부분 개량되었다. 물론 생활의 질은 크게 개선되었겠지만 때마다 초가지붕을 교체한다거나, 부엌과 외양관이 붙어있었다던 강원도의 옛집 정경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후손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크다.
집은 확실히 유행을 탄다. 도심 곳곳에 새로 건축되는 아파트 단지들을 보아하니 최근에는 높고 빼곡 한 형태를 선호하는 듯하다. 30층 정도야 이제 우스울 지경이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5층 짜리 주공아파트가 보편적이었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단독주택에 살았던 시절 도 있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몇 년 전, 한 TV 광고에 등장했던 문구다. 번듯한 자가 소유 부동산 하나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현대인의 꿈인 건 알지만 급기야 자기표현의 수단 까지 되는 시대라니, 대한민국 캥거루족의 대표주자로서 몹시 심기가 불편한 지점이다. 경제력으로 개인의 성취 수준을 판단하는 세상에서 집은 많은 함의를 지닌다.  

원주의 옛집들 

어찌된 일인지 고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원주에서, 그나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집들을 다 녀와 봤다. 하늘 높이 치솟은 현대식 집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향수가 거기에 있었다. 

* 최규하, 박경리 생가의 경우 생전에 생활(生活)했던 집이라는 의미로 생가(生家)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카데미 살림집 
최근 보전이 확정된 아카데미 극장 2층에는 극장주 가족이 거주하던 살림집이 있다. 극장 뒤편의 자그마한 정원을 지나 살림집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집안 곳곳에 놓인 오래된 가전도 그렇거니와 부엌 옆에 조그맣게 딸려있는 ‘식모방’이 흘러간 세월을 짐 작케 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중산층 가정에는 가사를 돌보는 고용인, 이른바 ‘식 모’가 있었다. 때문에 집을 새로 지을 때면 부엌 바로 옆에 식모가 생활하는 작은 방을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아카데미 살림집에서 사람 하나 몸을 눕히면 빠듯하게 차는, 협소하기 짝이 없는 공 간을 들여다보자니 괜스레 서글퍼졌다.





최규하 생가 
원주시립박물관 후원에는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최규하의 생가가 있다.  최 전 대통령이 세 살 무렵부터 생활했던 집터를 기증해 1997년 원주시립박물관이 건립 당시 옛집과 비슷한 구조로 복 원되었다. 전형적인 영서 남부 지역의 한옥형태로, 원래는 초가집이었지만 관리가 어려워 편의상 기와집으로 고쳐지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랑채 담장 안쪽으로 나무그늘이 살짝 드리워진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이 살지 않아 다소 적막한 느낌은 있지만 한옥의 매력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은 집이다. ​​



박경리 생가 

박경리 작가는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 이곳에서 26년에 걸친 <토지> 집필을 마무리했다. 등장 하는 인물만 600여명, 원고지로 무려 3만매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옛집 안은 가전이며 집기가 고 스란히 보존돼 있어 이채롭다. 집필실 책상 위로는 박경리 작가께서 즐겨 쓰시던 무시무시한 두께 의 국어사전과 부채, 만년필, 돋보기안경이 놓여있다. 박경리 작가는 <토지> 완성을 일생의 사명 으로 여겨, 집필실을 ‘글 감옥’이라 부를 정도로 거대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독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옛집은 간직할만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집을 열망한다. 오죽하면 두꺼비에게까지 부탁하겠는가. 옛날 집을 허물고 갑 작스레 새집을 짓는 광경은 언제 봐도 쓸쓸하다. 원주에 이름난 고택이 없는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최근 몇 년 간 새집을 만드느라 옛집을 지킬 겨를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역사는 대부분 문자로 기록되지만 그것으론 충분치 않다. 옛집에는 당대의 생활이 묻어난다. 문화재로 지정한다거나 누 군가 거주하는 집을 무대포로 일반에 공개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높디높은 곳으로 자꾸만 올라 가는 대신, 있는 집을 잘 고쳐 쓰는 문화가 우리 지역에 정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고문헌] 
<한국인, 어떤 집에서 살았나 - 한국 현대 주생활사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옛집기행 - 이 땅의 마지막 서민옛집 보고서 (이용한, 웅진지식하우스, 2005)>
<1980년대 강원도 한옥형 농촌표준주택 연구 (김영재, 강원대학교, 2007)>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현석 최규하 (재단법인 최규하대통령기념사업회)>​​


 글 황진영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