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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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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무지개


디자이너 두 분과 대표, 나 이렇게 넷이 대표의 차를 타고 판교와 남양주에 다녀왔다. 자동차 라디오에 나오는 기상 리포터가 오늘의 날씨는 미세먼지가 동풍을 타고 날아갔다며, 연신 맑고 쾌청한 날씨라고 강조했다. 정말 그랬다. 오늘 회사에서 바라본 북한산 봉우리는 선명했고 판교와 남양주를 오고 갈 때도 파랗고 선명한 겨울 하늘이 이어졌다. 

강릉이 고향인 C주임과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의정부와 고양을 전전한 P디자이너와 대표와 나는 차 안에서 내내 지치지 않고 떠들었다. 남양주 별내신도시를 지나 ‘고덕리엔파크’ 이름이 칠해진 아파트 옆면을 스쳐, 웅장한 성남시청에 대해 떠들다 판교에 도착했다. 미팅을 마치고 회사에서 진행 중인 박물관 문화재 복원 작업에 쓰일 수제나무상자를 받아가기 위해서 퇴계원IC에서 빠지려다 그만 출구를 놓쳤다. 

그 바람에 “그들은 영원히 그곳을 맴맴 돌았다는 전설이 곧 써졌다.”는 농담을 하며 겨우겨우 중간 경유지에 다다랐다. 영화 <별이 빛나는 밤>에 나오는 목수 할아버지를 닮은 ‘진짜’ 목수 할아버지가 나무 상자를 건넸고 대표는 그것을 트렁크에 실었다. 오후 4시의 불타는 노을을 얼굴에 가득 채워 넣고 평일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또다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C주임은 인기리에 방영 중인 외국인 예능 속 게스트와 아주 비슷한 이미지를 가졌다. 새하얀 피부에 작은 얼굴을 가졌는데, 평소 말투나 행동이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굉장히 자연스럽고 순수했다. 

예를 들어 회사 대표 옆에 서면 나오는 사무적인 언행 대신 뜬금없이 노을을 보며,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하거나 도시 반 시골 반의 모습을 가진 남양주 어느 도로를 지나며 속초 같다고 말했다. 나이와 직급의 영향 없이 감정을 언어로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러다 “유명 대기업에서 일했던 중년 남자가 아내와 어느 산골짜기로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대표는 직원에게 “그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그들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자기합리화밖에 되지 않는다. 분명 망했거나 등등 어떤 이유가 있어 그곳으로 간 거야.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C주임은 “전 그냥 그분들이 행복해 보이는데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거들며 “자신들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그 모습을 보며 자기합리화 같은 평가는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C주임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면 행복한 거겠죠.”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함께 야근하다 C주임과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눴다.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임님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거예요?”

“시각디자인이겠죠? 뭐 이런 업종에서 지금 하는 이런 일을 하겠죠.”

“불안한 같은 건 없으세요?”

“불안하긴 하죠.”

“제가 느끼기엔 나중에 주임님은 회사원이 아니라 개인 공방 같은 것을 차려서 활동할 것 같아요.”

“(웃음) 저 그러고 싶어요. 도시 아니어도 돼요.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저도요!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행복 하고 싶을 뿐이에요. 오늘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좋은 사람들과 떠들고 그런 일상이요.”

“저도 그래요. 일이나 회사가 전부가 되어서 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만두게 되면 정말 힘들 것 같아요.”

“맞아요. 전 어디 소속에 누구로 계속 의존하고 싶지 않아요. 소속을 떼어내도 흔들리지 않는, 주체성을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전 경력보단 경험을 쌓고 싶어요.”

“주변 친구들 중에 회사에서 몇 년 경력 쌓고 삼백 300만원씩 버는 친구가 있어요. 나중에 이직하기 편하겠죠. 그런 삶이 좋은 사람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전 그렇게 되면 불행해져 버려요. 하루하루 행복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솔직히 말하면 전 직급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요.”

“저도요. 직급을 동경하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내 고민이었는데(사실 이 고민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테지만) C주임과의 대화에서 뜻밖의 무지개를 본 날이었다.​


 

글 이지은
<2016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작은 회사를 다닐 때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