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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0-12
첨부파일 생의_에너지를_전하는_할매발전소_개관전.jpg 조회수 460

할머니가 ‘알아차린’ 예술

생의 에너지를 전하는 할매발전소 개관전
<Mother's Mother_알아차림 전(田)>

황둔초등학교 창평분교는 1949년 설립됐다. 학생 수가 점차 줄면서 1998년 인근의 황둔초 등학교에 통합, 폐교되며 배움터로서의 기능 은 상실했지만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추억만 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개교 이래 수십 년 간, 대를 이어가며 교문을 통과했을 아이들의 발자국과 서로 정답게 나눈 인사 한 마디, 함 께 웃고 울었던 시간들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마을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불 꺼진지 오래된 교정에 얼마 전부터 반가운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할매발전소’라는 멋진 간판도 걸렸다. 편협한 시대에 태어나 연필 쥘 새 없이 살았지만 누구보다 이 공간을 아꼈던 마을의 ‘할매’들이 학교의 새 주인공이 되었다. ‘할매발전소’는 유휴공간을 활용해 지역에 새 로운 숨을 불어넣고 지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고령자가 예술 생산자의 주체가 될 수 있 다는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고자 마련되었다. 할매발전소의 개관에 발맞춰 지난 9월 1일 열 린 은 척박한 강원도의 땅을 일구며 힘차게 살아온 마을의 할머니들과 그들의 애환이 쑥쑥 자라 났을 ‘밭’에 집중한 기획 전시다.   

건물 옆구리에 난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금줄 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너머에 ‘그 리운 게 있냐고?’ 묻는 문구가 뭉클한 물음표 를 던진다. 그렇게 시작된 할매들의 작지만 위 대한 이야기는 뜻밖에도 비트와 춤으로 마무 리된다. 대체 무슨 사연인지 궁금해 할 독자를 위해 할매발전소와 이번 전시를 기획한 로컬 리티:(김영채 석양정 심지혜)와 나눈 대화를 공유한다. 



‘로컬리티:’를 소개해주세요. 

저희 로컬리티:는 3인의 기획자로 이루어진 팀 입니다. 영상과 디자인 작업을 하는 김영채 대 표, 아카이빙과 텍스트 콘텐츠 작업에는 석양정 작가, 전시 기획과 현지 네트워킹을 하는 심지혜 큐레이터가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입니다. 첫 번 째 활동지였던 울산을 배경으로 2018년부터 한 해에 하나씩 소소하게 프로젝트를 했고 2021년 에 회사를 설립해 콘텐츠 제작사로서 본격적으 로 활동했습니다. 지난 해 할머니의 레시피와 삶 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인 ‘할머니의 잘 지은 밥 상’을 시작했고요, 올해부터는 이곳 원주시 신림 면의 ‘할매발전소’라는 공간에서 로컬을 기반으 로 한 문화 예술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로컬리티:’라는 이름에 ‘:’를 붙인 이유가 궁금해요. 
‘지역을 이루는 작고 소중한 삶을 조명하는 것 부터 시작하자’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에요. ‘:’ 는 머무름표잖아요. 머물고 싶은 로컬(지역)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 이 지역에 더 깊이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알리는 매개 역할을 하려는 우리의 의지가 담 겨있어요. 로컬(Local) 옆에 머무름표를 붙여 서 지역에 좀 더 머물다 가기를, 누구나 머물 고 싶은 지역으로 ‘로컬리티:’가 안내한다는 의 미예요. ‘로컬머무름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간혹 ‘:’를 오타로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웃음)

 

지역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특별 히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게 된 까닭 이 있을까요?
조금 전 로컬리티:의 미션에 대해 설명했던 것 과 마찬가지 이유예요. 특히 이 마을 인구의 경우에는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의 비율이 높 아요. 여기에 더해 워낙 토박이 주민이 많은 동네다보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고유 한 지역색이라든가 특산, 역사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모두 아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 문에 콘텐츠의 중심을 ‘할머니’로 잡았죠. 그렇 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다 보니 ‘할머 니가 신림의 가장 큰 특색이구나’ 싶었습니다. 

 

이곳이 사실은 도심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 진 곳인데, 할매발전소를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도 사실 이런 데가 있​는지 잘 몰랐어요. 지역 내 유휴공간을 답사하던 중에 ‘한 번 가보자’ 하고 들어갔다가 이 공간 이 비어있는 걸 확인했죠. 이곳을 위탁운영하 고 계신 참살이건강마을영농조합법인을 방문 해 젊은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십사 말씀을 드 렸더니 흔쾌히 승낙하셨어요. 영농조합에서는 공간을 제공하고 저희는 콘텐츠를 채워서 ‘할 매발전소’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전시에 필요 한 공간 수선비는 강원문화재단의 유휴공간 지원사업을 통해 마련했죠. 




송계리(황둔)가 고향이시라고요?

활동은 다른 지역에서 했지만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기반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동 료들과 비교해 현지에서의 네트워킹이 수월한편이었습니다. 로컬 작업을 하며 많은 분들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주민 참여 예요. 처음 이 사업을 강원문화재단에 제안했 을 때 ‘이걸 어떻게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기 도 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해법이 있어요. 로컬에 사는 사람이 작업에 참여하면 돼요. 혹은 저처럼 고향인 사람이 하면 돼요. 그 래서 저는 로컬에 산다는 게 정말 큰 장점이라 고 생각합니다. 로컬리티: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은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온 구성원 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죠. 

 

이 라는 전시 타이틀이 독특해요. 흔히 사용 하는 ‘전(펼 전, 展)’자 대신 ‘전(밭 전, 田)’ 을 사용한 것도 이채롭습니다. 

지난 해 할머니들 생애사 기록 작업을 하며 느 꼈던 건, 딱딱한 질문 대신 할머니들께서 거리 낌 없이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소재로 다가가 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할머니의 잘 지은 밥상’을 예로 들면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들은 누구나 음식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시 작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까지 음식을 통 해 편안히 이야기 해주시는 걸 경험했어요. 올 해는 밥상에서 밭으로 옮겨온 셈이죠. 작년에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니 이번엔 할머니가 평생을 사셨을 ‘밭’이라는 공간으로 바꿔서 아카이빙 작업을 해보자. 그래서 전시 타이틀 을 고민할 때, 여러 가지 포괄적인 의미에서 접 근했어요. 할머니가 일구는 밭일수도 있고 마 음의 밭일수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알아차림’ 은 우리가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뜻도 있고 반대로 할머니가 자손들의 마음을 알아차 린다는 교감의 의미도 있죠. 또 하나 ‘Mother's Mother’라고 한 것은, 우리는 할머니라고 부르 지만 누군가에게는 엄마이기도 하잖아요. 누구 도 처음부터 할머니는 아니었듯이 교차되는 모 습을 전시에 담고 싶었어요. 말하고 보니까 욕 심 가득한 제목이네요. (웃음) 

 

마을 할머니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교 류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이 어렵 지는 않았나요?
촬영에 참여하셨던 어르신들의 주변 분들이 처 음에 ‘조심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대요. 그거 다 사기라고. (웃음) 왜냐하면 저희는 텔레비전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익숙한 매체가 아니니까. 처음에는 경계가 심했는데 기존에 참여하셨던 분들을 보고 안심하고 참여하는 이런 과정을 거 치면서 생각보다 어르신들이 마음을 금방 열어 주셨어요. 나중에는 도리어 할머니들께서 적극 적으로 더 참여하셔서 인터뷰가 끝나고도 ‘나 못 한 말이 있는데~’ 하면서 찾아오시기도 하셨죠.

혹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에 할머니들 께서 거부감은 없으셨나요? 

전시 이전에 ‘할머니의 잘 지은 밥상’ 연계 프 로그램으로 원주시민들이 할머니 댁에 와서 가마솥, 화로, 솥뚜껑 같은 가재도구에 음식을 해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세 번 정 도 진행했었어요. 그 때 할머니들께서 강사로 활동하셨거든요. 저희가 제안을 드렸을 때 한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해보자. 새 로운 건 뭐든지 해보자.” 깜짝 놀랐죠. 또 다른 할머니께서는 “나 원래 고추 따러(아르바이 트)가야 하는데 거기 안가고 강사로 왔어”라고 도 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작업이 할머니들 께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비용일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이후부터는 조금 더 자신 있게 제안을 드렸던 거 같아요. 실제로 새벽 밭일을 마치고 나면 남은 일과를 굉장히 무료 하게 보내시는 경우가 많아요. 할머니들께 뭔 가 재밌는 시간들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죠. 

 

그렇군요. 참여하신 할머니들께서도 무척 즐거워하시고 뿌듯해하셨을 것 같아요. 

저희가 전시 기록영상을 제작하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하니까 어 떠세요?’라는 질문을 드렸어요. ‘사람 하나가 꽤 오래 살어.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해보지’ 라고 답변하셨던 말씀을 이번 전시에 활용하기도 했죠. 할머니들은 학업을 하진 못하셨더 라도 운동회라든지 소풍처럼 여기서 함께 하 셨던 기억은 고스란히 가지고 계세요. 시골 분 교 같은 경우는 손이 많이 모자라니까 마을 어 머니들이 선생님들하고 다 같이 밥을 해서 드 셨고 반대로 선생님들이 할머니들 밭에 가서 일을 도와주시기도 했대요. 말하자면 학교와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왔던 기억을 갖 고 계시는데 어느 순간 폐교가 되었잖아요. 아 무래도 공허함이 꽤 크셨던 거죠. 할머니들께 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물론 새로운 일 이지만 이 공간 자체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기쁘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마실도 자 주 오세요. 저희 출근했나, 안 했나 보고 가시 고.(웃음) 한 번은 한 관람객이 ‘마고 무도장’ 전시 관람의 일환으로 헤드폰을 끼고 춤을 추 고 있는데, 마실 나오셨던 할머니께서 이 모습 을 보시곤 춤을 같이 추신 일이 있어요. 관람 객이 엄청난 감동을 받으셨죠. 이런 마음이 계 속 교차하면서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할매발전소의 유튜브 채널에서 ‘할머니의 잘 지은 밥상 : 원주 옥수수편’을 보는데 마 음이 뭉클하더라고요. 특히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프롤로그 문구가 인상 깊었 는데요, ‘나도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기록도 잘해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을 저희는 ‘마지막 구술 세대’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도시에 계신 분들 은 글을 굳이 쓰지 않아도 사진을 찍으면서 순 간의 기억을 남기는데 여기 어른들은 사진 찍 히는 것도 싫어하시고, 직접 찍으시지도 않고 글도 쓰실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보니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 이야기예요. 할 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말 모르시는 게 없어요. 오랜 세월 삶을 통해 체득한 지혜죠. 이 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로 느 껴졌어요. 마음 같아서는 마을 할머니 한 분, 한 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여건이 안 되다보니까 고민이 많아요. 내년에 는 더 많은 할머니들이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자신만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보고 싶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역에 관심이 많이 늘 었어요. 관련해서 아카이빙 작업도 많이 생기고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생기 기도 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떤 걸 만들어야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 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희도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로컬전성시대’라 는 말이 나올 만큼 지역에 가치가 있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고민인 거죠. 첫 번째론 로컬에 있는 사람들이 작 업에 참여해야 해요. 지역 고유의 문화, 말 한마 디에 담긴 속뜻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온도 차이가 크잖아요. 또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가치 를 재발견하고 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래야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긴 호 흡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다양성 을 갖췄으면 좋겠어요. 지역에서 가장 부족한 건 아무래도 인력이에요. 인력과 새로운 아이디어, 기획 이런 것이 부족한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콜라보레이션(협업)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 리 로컬리티:도 결국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서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생의 에너지를 전하는 할매발전소 개관전   

2022. 9. 1 ~ 11. 27 매주 금·토·일 10:00~17:00 무료관람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할매발전소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원골길 5



 취재·정리 황진영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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