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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0-27
첨부파일 고판화_박물관_명품_초청_특별전.png 조회수 411

“그 시절, 복사-붙여넣기”
‘고판화 박물관’ 명품 초청 특별전 <아시아 옛 그림책>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을 뚫고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도착했다. 공항에 있는 환전 소 앞을 지나자 영어와 서툰 한국어가 번갈아 들렸다. “언니! 환전! Exchange!” 베트 남 같지 않았다. 내가 발 딛고 선 곳이 생경한 언어로 이뤄진 땅임을 깨달은 건 하노이 시내로 들어오면서부터다. 알파벳과 비슷한 문자로 이루어진 시각물들이 계속 이어지 고 높낮이가 또렷하고 된소리가 강한 언어가 계속 귀에 들어왔다. “신 짜오(안녕하세 요)”와 “신 로이(실례합니다)”, “깜 언(고맙습니다)”이 내가 유일하게 알아듣고 내뱉을 수 있는 베트남 말이었다. 당장 옆에서 누군가 베트남 말을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해도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봐도 글자를 읽을 수 없다. 대신 그림 이나 사진을 가리키며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 말보다 정확한 건 그림이다.


그림으로 맞추기

원주 시립중앙도서관 전시실에 걸린 수많은 옛 판화를 둘러보다 베트남에서 딤섬을 파는 식당에서 본 메뉴판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그때 내가 먹은 딤섬의 이름을 모른다. 모양은 안다. 메뉴판에 있는 딤섬 사진을 보고 골랐기 때문이다. 전시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자보 다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자를 쓰윽 훑어도 내가 아는 한자는 드물다. 눈을 위에서 아래로 열심히 굴려도 별 소득이 없다. 차라리 그림을 보는 것이 낫다. 이건 부처님의 얼굴이 고 저건 지옥세계이다. 조선의 고위 관료들이 행차한다. 이들은 각자 무언가를 하는 중이다. 글을 몰라도 그림으로 알 수 있다.

 


그 시절, 복사-붙여넣기

전시품들은 모두 판화다. 찍어낸 것들이다. 요즘 방식으로 ‘복사-붙여넣기’다. 지금은 버튼 하나로 뚝딱 똑같은 글과 그림이 만들어지지 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무판을 파거나 깎은 다음 먹을 묻혔다. 그렇게 만들어진 판화 는 지식을 전달하거나 신앙의 도구로 쓰였다. 일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품이자 내적 유 희를 이끄는 감상 대상이기도 했다. 경북 합천 에 보관 중인 ‘해인사 대장경(팔만대장경)’ 목 판이나 경북 경주에서 발견한 ‘무구정광대다 라니경’ 목판 인쇄본처럼 글자만 있는 것도 있 지만, 글자와 그림이 같이 있는 것도 있다. 마 치 하노이에서 들어간 딤섬 식당에 있던 메뉴 판처럼 글을 몰라도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번쯤 들어본 <오륜행실도>가 대표적이다. 유교 덕목을 지킨 인물들의 이야기를 표현한 그림에 한문과 한글로 된 글을 함께 볼 수 있 다. 한편, <오륜행실도>는 목판 인쇄술 덕분에 널리 복사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목판은 전 국에 하나만 남았다. 이마저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식 사각 화로(囲炉裏(いろり), 이 로리) 형태로 남는 수모를 겪었다. 

 


원주에 있는 고판화 박물관
전국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륜행실도> 목 판이 원주시 신림면에 자리한 ‘고판화 박물관 (관장 한선학)’에 있다. <오륜행실도> 목판 외 에도 7점의 문화재가 있다. 수집한 고판화만 6,000점에 이른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 본, 티베트, 몽골 등의 아시아 작품도 소장 중 이다. 상시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이 있다. 관람 뿐만 아니라 직접 판화를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그 시절, 복사-붙여넣기’ 방식 덕분에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알고 깨우쳤다. 판화 속 에 문명이 있다.

 

​ 글 이지은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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