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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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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만남에 주름이 지고


하루는 일력을 북 찢을 때 시작해 금세 끝난다. 뒤돌아 볼만큼 선연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겨를 없이 다시 겨울 문턱에 다다랐다. 무감(無感)에 가까워진 뒤로 어떤 순간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졌다.
어느 날에 오래전에 남겼던 글을 꺼내 읽었다.
일기라고 부르기엔 성실하지 않고 산문으로 치기에는 주제가 뚜렷하지 않은 글 뭉치는 유감(有感)으로 가득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자극이 그때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쏟아지는 것들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쏟아지는 것을 일일이 새길수록 밖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안과 밖이 점점 멀어진다. 그럴수록 남는 건 나를 바라보는 나뿐이다.
유감보다 무감에 절어 모르는 미래로 가고 있다. 애석하게도 올해도 거의 끝이 났다. 태어난 해가 또 이렇게 멀어졌다. 지난 만남에 주름이지고 당신과 나는 아직 동시대 사람이다.
“고맙고 무사히.”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은 말이다. 우연히 지금 여기에서 만나 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겨울을 날 채비를 한다.

 





 글 이지은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