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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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3,015 | |
따사로운 초여름의 햇살이 얼굴을 자극합니다. 따뜻한 햇살에 한가로운 졸음이 쏟아집니다. 마음이 개운해지는 자연의 싱그러운 향과 기운을 느끼러 길을 나서 봅니다. 낭만과 활력이 넘치는 원주의 풍경이 당신께 색다른 여행을 선사합니다. 법천사지(사적 제466호)는 신라 시대에 세워져 고려 시대에 크게 융성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려 현재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와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반납되어 경복궁 뜰에 보존되어 있다. 한때 융성했던 불교문화의 흔적과 아픔을 간직 한 우리네 근현대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원주시 부론면 남한강변에 고요한 풍경의 옛 절터가 있다. 부론면 법천리 명봉산 자락에 위치 한 법천사지. 법천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임진왜란 때까지 존재했던 사찰로 경주 황룡사와 익산 미륵사 다음 가는 중부지역 최대 사찰이었다. 지금도 법천리 주민들은 법천사지 앞터를 서원이라고 부르는데, 서원은 지금의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었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서 수백 명의응시자들이 법천사지에 들러 숙식을 해결하고 명봉산의 자연을 벗 삼아 과거 시험을 준비했다고 전해지니 그 옛날 법천사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법천사지에는 법당이나 조사당 등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당간지주를 비롯해 지광국사탑비와 법당터, 석탑 일부만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절터에서 나온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법천사지는 10년 넘게 발굴조사 작업이 한창이다.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넓은 밭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절터 윗부분에 국보 제59호인 지광국사탑비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광국사탑비는 고려 선종(1085년) 때 세운 것으로 높이는 4.55m정도 된다. 돌거북이 고개를 쳐들고 탑비를 받쳐 들고 있는데 당당한 기풍에 한 번 놀라고 정교한 조각 솜씨에 한 번 더 감탄하게 한다. 비 옆으로는 용 두 마리가 하늘로 치솟는 모양을 하고 있고그 가운데에는 여의주가 빛을 발하고 있다. 천 년 전에 만들어진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각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정교하다. 지광국사탑비는 법천리의 자랑거리이자 보물이지만, 몇해 전 벼락을 맞아 일부가 훼손돼 주민들의 안타까움이 크다. 지금의 탑비 자리에는 ‘지광국사현묘탑(국보 101호)’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돼 지금은 경복궁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잃고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유물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파오면서 절터가 더욱 적막하게 느껴진다. 법천사지의 절터에는 석탑재와 파불,주춧돌 등 절을 이루었던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현묘탑이 위치한 언덕에 서서 발 아래로 넓게 펼쳐지는 법천사 터를 바라보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면서 ‘폐허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있었던 한때를 조용히 반추 하는 곳이며, 지금 은 사라진 것들이 한때는 빛났다는 것, 지금 빛나는 것들도 언젠가는 소멸할 것임을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성찰의 공간’ 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글. 김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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