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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BOOK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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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석류의 씨>

 


우숙영(지은이) · 이민선(그림)
목수책방 · 2022

 

 


삶을 이전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사랑이다. 사랑하면 잿빛 현실이 순식간에 색색으로 물든 꽃밭이 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유명한 미국의 화가 디어링의 집에서 그의 딸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리지도 10월 어느 날에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잘 생긴 유부남 화가와 이제 막 사랑에 처음 눈 뜬 젊은 여성의 만남은 화가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뜨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디어링은 딸 양육을 위해 아내가 남겨놓은 유산을 찾으러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떠난다. 갑작스러운 이별이지만 둘은 편지를 주고받기로 약속한다. 리지는 꼬박꼬박 편지를 쓰지만, 어느 날 부턴가 그에게서 답장이 없다.
19세기 미국 여성 작가 이디스 워튼이 쓴 단편소설집 《석류의 씨》중 첫 번째로 실린 〈편지〉에 일부 줄거리다. 사랑에 빠진 여성 리지는 “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그를 띄워주면서도 눈 멀게 하는 거칠고 눈부신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녀보다 더 나이가 많고, 더 둔하며, 더 칙칙한 여성들”을 보며 ”그들이 과연 이런 행복을 알까?”라며 한껏 동정심을 갖는다. 리지에게 사랑은 행복한 감정 그 이상이다. 남자에게 사랑 받는 여성이라는 태그는 다른 여자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을 갖게 만든다. 사랑에 빠진 나만큼 자신감 있는 존재는 없다.
〈편지〉는 주인공 리지가 겪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과 단계는 뭇 여성이라면 한번쯤 겪어봄직한 일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에는 세상에 만들어놓은 올바른 규칙도 소용없어지고 세상에는 나와 사랑하는 이 빼고는 모두 흐린점이 되어버린다. 드문드문 싸한 생각에 빠지지만 결코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기에 감히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리지가 내 얘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에 빠진 여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글 이지은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